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회초년생 김모(30)씨는 이번 설에 만날 친척들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늦깎이 취업에 성공하고서 맞는 두 번째 명절이지만 지난 추석 때 기억이 생각나서다. 그의 취업소식을 듣고 나서 고모는 월급이 얼마인지부터 물어봤다. 대충 얼버무렸지만 그 뒤에 이어진 고모의 자녀 자랑에 재차 기분이 상했다. 김씨는 “올해는 가급적이면 친척끼리 있는 자리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왜 명절 때마다 무슨 숙제도 안 해간 학생마냥 쩔쩔매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했다.

지난해 5월 결혼식을 올린 신혼 정모(33)씨 부부도 ‘숙제 검사’에서 예외가 아니다. 정씨 부부는 아직 아이를 낳을 계획조차 세워본 적 없다. 하지만 친척 중에는 부부를 볼 때마다 자녀계획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어르신들은 외려 조심을 하는 편이지만 자녀가 있는 사촌형 부부 등 젊은 친척들이 더하다. “하루라도 빨리 낳는 게 좋더라” “나이 먹어서 애보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르냐”는 등 ‘젊은 꼰대’식 잔소리다. 정씨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겠지만 어차피 결론도 없는 이야기를 왜 매번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학생과 초등학생 두 자녀를 둔 김모(43)씨는 이번 명절에 시어머니가 또 자녀에게 잔소리를 할까봐 마음의 준비를 했다. 김씨는 “큰 딸 교육에 걱정되는 부분을 우연히 한번 시어머니 앞에서 말했더니 명절 때마다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셔서 듣기가 거북스럽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아이도 같은 이야기를 매번 들으니 귀담아 듣기보다는 불쾌해하고, 부모 입장에서도 다른 친척들 앞에서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시대가 흐르면서 명절 풍경도 변했지만 명절 잔소리로 인한 고통은 여전히 남아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명절 직후에는 두통이나 소화불량, 우울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다수”라며 “대개 스트레스성 질병에서 비롯된 통증”이라고 설명했다. 명절 기간 동안 받는 스트레스가 신체적인 통증으로도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증상은 대개 명절 전후 2~3일 간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가족 사이일수록 더 예의를 지키고 상대의 기분을 배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교수는 “밖에서야 무례한 질문을 한 사람을 무시하거나 안 만나면 되지만 가족끼리는 그럴 수도 없으니 상처가 더 깊어지고, 가족과의 자리가 더 불편하고 싫어질 수 있다”면서 “가족으로서 상대방에 대한 궁금증보다 질문 자체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더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 특유의 서열문화 상 수평적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점을 손윗사람들부터 이해하고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명절 기간 친척들의 잔소리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자아를 갖춰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김병수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다른 사람의 말에 (불쾌한) 자극을 받는 건 근본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남들의 평가에 민감한 한국 사회의 특성도 스트레스에 한몫한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를 무언가가 부족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규정한다”면서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좋아하는 태도를 의식적으로 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친인척이든 부모든 남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생각과 입장일 뿐 내 삶의 ‘운전석’은 내가 잡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되새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남들의 이야기가 거슬리더라도 그 말들이 내 의식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바깥에 머물도록 해야한다”면서 “남들이 내게 하는 말을 전부 통제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의지를 가지고 노력해야 하는 일”이라고 충고했다.

명절을 전후로 한 스트레스는 개인뿐만 아니라 각 가정의 화목에도 영향을 미친다. 명절이 있는 달에 이혼 건수가 순간적으로 줄었다가 명절을 쇤 뒤 급증하는 양상이 반복되고는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에는 추석 연휴가 있던 9월 이혼 건수가 약 7200건이었다가 다음달인 10월 약 1만500건으로 1년 중 가장 높게 치솟았다. 설에도 마찬가지 양상이었다. 설 연휴가 있던 2018년 2월 이혼 건수는 약 7500건이었지만 다음달인 3월에는 약 9100건으로 갑자기 늘었다.

가정상담연구소를 운영하는 최규련 수원대 아동가족복지학과 교수는 “실제로 명절을 전후해서 가정 상담이 급증하는 경향이 있다”고 소개했다. 최 교수는 “대부분 명절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건 여성 쪽”이라며 “며느리가 명절 날 친정에 가지 않고 시댁 가족과 함께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문화가 여전하다”고 말했다.

명절 때문에 생긴 가정 내 갈등에서 최우선시 되어야 하는 건 ‘배려’다. 최 교수는 “명절 갈등의 경우 부부 사이 다툼이 직접적 원인이 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라며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겪는 배우자의 기분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덧붙였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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