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많은 사람이 애창하는 ‘편지’는 1970년대를 대표하는 히트곡 가운데 하나다. 이 곡을 부른 남성 듀엣 어니언스는 수많은 오빠부대를 거느리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니언스가 양파들이 돼버렸다. 어니언이 양파니 틀린 건 아니지만 두 단어의 뉘앙스 차이는 어찌할까.

어니언스만이 아니었다. 쌍둥이 자매로 구성된 바니걸스는 토끼소녀가 돼야 했고, 패티김은 김혜자, 4중창단 블루벨스는 청종(靑鐘)이 됐다. 가톨릭 세례명을 예명으로 썼던 김세레나(본명 김희숙)는 본명을 쓰라는 당국의 압력에 김세나로 타협을 봤다고 한다. 외국어 간판을 내걸었던 무수한 가게들도 우리말 간판으로 바꿔 다느라 법석을 떨어야 했다. 박정희 정권이 전개한 국어순화운동의 결과였다. “모든 분야에서 쓰는 외국어를 우리말로 다듬는 시안을 마련하라”는 대통령 지시 한마디에 이런 촌극이 빚어졌다.

이에 따라 외국어투성이인 스포츠 용어도 대거 우리말로 바뀌었다. 축구의 코너킥은 구석차기 오프사이드는 진입반칙으로, 야구의 스틸은 자리뺏기로, 권투의 잽은 톡톡치기로 대체됐다. 이렇게 557개의 스포츠 용어가 우리말로 순화됐다. 이를 계기로 순우리말 스포츠 용어 사용이 자리를 제대로 잡았다면 남북 단일팀을 구성할 때마다 남북이 사용하는 용어가 달라 겪어야 했던 불편함이 다소 덜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외국어 사용 빈도 또한 급증하고 있다. 새로운 사회 현상이나 기술 등을 설명할 때 거의 예외 없이 낯선 외국어들이 등장한다. 생소한 단어들이 너무 많고, 의미가 와닿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국립국어원은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새말모임을 통해 외국어 용어 가운데 바꿔 쓸 만한 우리말 찾기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활동에 들어간 새말모임에서 지금까지 우리말로 대체한 외국어 용어는 총 18개다. 2016년 스웨덴에서 시작된 새로운 운동법 플로깅(plogging)은 ‘쓰담달리기’, 치팅데이(cheating day)는 ‘먹요일’이 됐다. 지난 9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된 새말모임에선 다크 패턴(dark pattern)이 ‘눈속임 설계’,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가 ‘동물 수집꾼’으로 다듬어졌다. 박정희 시대 국어순화운동은 방법이 잘못됐을 뿐이지 취지는 바람직했다. 우리가 우리말을 사용하지 않는데 누가 우리말을 쓰겠나.

이흥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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