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 쏟아지는 낡은 교회당… ‘비닐 기둥’ 세우고 닦아내고

이경은 목사의 ‘아스팔트에 핀 부흥의 꽃’ <13>

2007년 8월 폭우로 새는 빗물을 처리하기 위해 설치한 비닐과 빗물을 쓸어 담는 성도들.

주인이 비워 달라고 해서, 시끄럽다는 민원으로, 혹은 성도가 늘어나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예배당을 옮겨 다니다가 1999년 드디어 공장 지대의 한 건물을 매입해서 리모델링한 뒤 입당했다.

처음으로 마련한 우리 예배당이었다. 성도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정성스레 쓸고 닦고 관리했다. 하지만 낡은 건물이었기에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누수현상이 나타났다. 비가 오는 날이면 천장이 젖었다가 빗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빨간 대야와 수건이 등장해 빗물을 받아내곤 했다.

처음에는 한두 곳이 그러더니 점점 새는 곳이 많아지면서 교회의 대야란 대야는 모두 등장할 지경이 됐다. 비가 조금이라도 많이 쏟아지는 날이면 성도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교회로 모여 무사한지 살폈다. 고맙게도 어린 자녀들까지 달려와 교회를 걱정했다. 그때 그 자녀들은 군에 가서도 교회를 걱정할 정도로 잘 자랐다.

2007년에 이르러서는 천장에서 쏟아지는 빗물의 양이 상당해졌다. 천장에서 큰 비닐 기둥을 아래로 내려 빗물을 받아냈다. 진기한 장면에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살다 살다 불기둥, 구름 기둥은 들어봤어도, 비닐 기둥은 처음이네예.”

비가 퍼붓던 여름날이었다. 교회 앞 도로는 배수가 잘되지 않아 빗물이 차올랐고, 도로변에 주차된 차들이 하나둘 물에 떠 오르기 시작했다. 저녁 기도회 시간이 되자, 차를 탈 수 없어 교회까지 걸어와야 했던 성도들은 허벅지까지 차오른 빗물을 가르면서 교회 마당으로 들어섰다.

계속된 폭우에 예배당 입구 출입문까지 물이 차올랐고 성전 벽을 타고 빗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목사님, 벽으로 빗물이 들어와요!” “바닥에서 물이 차오르고 있어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수건과 걸레를 들고 빗물을 막아내고 닦아냈다. 그렇게 그날 저녁 기도회가 끝났다. 하나님의 성전에 빗물이 넘쳐 드는 광경에 내 마음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설상가상 그즈음 진주시청에선 공단지역에는 종교시설이 들어설 수 없다며 이전 통보를 해왔다.

IMF 구제금융 당시, 공단 지역이 폐허가 될 지경에 이르자 시에서는 분명 우리 교회의 이전을 허락했다. 우리의 정당함을 밝혔지만, 이 일로 우리를 도와줬던 담당자가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반박하는 것을 포기했다. 교역자들과 성도들은 내게 왜 그래야 하냐고 물었지만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교회니까요. 교회는 그래야 하니까요.…”

2008년 11월 진주시 망경동에 완공된 순복음진주초대교회 전경.

그렇게 2007~2008년을 성전 건축의 해로 공포했다. 이곳저곳 예배당 터를 알아보던 중, 혁신도시가 들어설 예정이었던 곳에 건축을 계획했다. 하지만 혁신도시 건축 계획은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하나님은 숨겨 놓으셨던 곳을 발견케 하셨다. 망경동에 있는 유치원으로 사용하던 땅이었는데, 동네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어 교통도 원활하지 못했다. 하지만 워낙 싼 가격에 나온 터라 계약을 진행했다. 그런데 땅 주인이 내게 제안을 했다.

“목사님, 죄송하지만 계약서를 가짜로 한 개 더 적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네, 세금이 많이 나와서예.“

세금이 2000만원이나 나온다며 가짜 계약서를 요구하는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목사입니다. 목사가 거짓말하기를 원하십니까. 땅도 싸게 주셨으니 그 세금 2000만원 저희가 대신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가짜 계약서 안 써도 되겠습니까.”

주인이 반가워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순복음진주초대교회 이경은 목사는 진짜 목사”라며 온 동네에 소문을 내주었다. 이 일로 2000만원보다 더한 홍보 효과를 보았으니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렇게 땅을 계약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 내 마음은 한없이 무겁기만 했다. 성도 중 한 소녀가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건축업자도 선정하지 못한 채, 가설계도만 받아 놓은 상황이었다.

그 아이를 위해 무릎을 꿇으면서 설계도를 앞에 두고 기도했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교회를 건축해야 합니까.” 깊은 밤 홀로 기도하며 울부짖었다. 그때 부르짖는 내게 하나님은 마음속에서 음성을 주셨다.

“사랑하는 종아, 내가 이 땅에 무엇 하러 왔느냐.” “저희를 죄에서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내 직업이 무엇이냐.” “목수이십니다.” “목수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 “집을 짓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내가 누구 집을 짓겠느냐.” “당연히 아버지 집….”

말문이 막혔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양 떼를 지키는 목자로 오셨다면 이해가 되는데 왜 하필이면 목수로 오셨을까.’ 늘 혼자서 궁금해 했던 질문이었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는 그 이유를 깨닫게 해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날 밤 기도 중에 큰 깨달음과 함께 용기를 주셨다.

“그래, 하나님께서 친히 지어 주겠다 하시는데, 나 한 사람 희생제물이 돼보자.” 그렇게 순복음진주초대교회의 새 성전건축이 시작됐다.

▒ 아바드리더시스템이란
성령세례 받으면 하나님 자녀임을 확신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9~11)

천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구하면 좋은 것, 성령(눅 11:13)을 주신다고 약속하고 계신다. 얼마나 좋은 것이기에 성령을 가리켜 좋은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성령세례 받으면 과연 어떤 유익이 있는 것인가. 성령 세례의 유익이 어떤 것인지 대략 살펴보자. 가장 먼저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게 된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수 있고 사랑의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성령을 받으면 어떤 고난의 길도 따라갈 수 있게 된다.

베드로가 그랬다. 예수님이 잡히시자 두려움에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그가 성령을 받은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능욕 받는 것을 기뻐하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주와 복음을 전하는 길을 간다.(행 4:19~20) 그리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더 잘 받게 된다.

오순절에 보혜사 성령을 받고 모인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전혀 기도하기에 힘썼다.(행 2:42) 뿐만 아니라 그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행 2:46) 그처럼 성령을 받으면 성전을 사모하게 된다.

또한 3년을 주님과 함께하고도,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도 믿지 않던 주님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는 순교함으로 주의 증인이 됐던 것처럼(행 12:2) 천국의 소망이 확실해진다. 더불어 마음에 기쁨과 평강을 얻게 될 뿐 아니라 재물을 제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늘에 쌓아두게 된다.(행 4:32~35)

이 모두가 성령세례 받았을 때 얻게 되는 유익이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요 16:7)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인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성령세례의 유익 가운데 우선 몇 가지만 상세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게 된다. 어릴 적 어머니들은 “너는 길에서 주워왔어”라는 말씀들을 곧잘 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왜 그럴까. 어머니가 나를 낳아준 어머니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나를 낳아준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보아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나의 어머니인 것을 확신하는 것은 그냥 믿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령세례를 받으면 보지도 못한 하나님이 아바 아버지인 것이 믿어진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 8:16) 이 말씀 그대로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목사가 된 남편이 그랬다. “교회 오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 같고 교회를 벗어나면 하나님이 어디 있노”라고 하던 남편이 성령을 받았다. 흘리는 눈물, 콧물이 대야에 그득할 정도로 온종일 하염없이 울던 그날로부터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인다’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며칠이면 그만두겠지 하던 그 일이 지금까지 이어져 하루도 빠지지 않고 365일 기도회를 인도하고 있다.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남편은 말한다. “63빌딩을 주어도 바꾸지 않는다”고. 남편은 배짱 있게 큰소리치며 성령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를 말한다.

이처럼 성령 받기 전에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고 했던 사람이 성령을 받은 후에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성령 받고 뜨겁게 기도하던 우리 교회에 한 자매가 찾아왔다. 그는 “느거 하나님이 어디 있노,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보여주라”며 기도하던 우리를 비아냥거렸다. 나도 보지 못한 하나님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기도로 하나님께 여쭸다. 나처럼 기도하면 믿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 함께 기도하자고 했다. 함께 기도한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성령세례를 받았다. 그러더니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네요”라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고백하는 것이 아닌가. 비웃던 그를 어느 누가 몇 시간 만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믿어지도록 바꾸어 놓을 수 있겠는가. 성령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는 사람으로 단번에 변해버린 그를 보고는 너무나 놀랐다.

이처럼 성령을 받으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증명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 다 믿어진다. 이는 성령 받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축복이다. 성령세례, 이 얼마나 귀한 선물인가.

이경은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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