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극장가에 두 편의 영화 ‘남산의 부장들’과 ‘미스터 주: 사라진 VIP’를 선보이게 된 배우 이성민. 그는 “둘 중 더 애착이 가는 작품을 꼽기는 어렵다”면서 “두 편 모두 좋은 결과를 거두길 바란다. 주 관객층이 다르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리틀빅픽처스 제공

“아침을 못 먹어서요.” 빵 조각을 입에 넣던 그는 멋쩍은 듯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평소와 달리 어쩐지 핼쑥해 보였다. 영화 두 편의 홍보를 병행하면서 드라마 ‘머니게임’(tvN) 촬영까지 겸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올 설 극장가에서 가장 많이 만나게 될 배우 이성민(52)을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마주했다.

영화 경력만 20년에 달하는 그이지만 같은 날 동시에 두 편의 영화를 공개한 건 처음이었다. 그가 출연한 신작 ‘남산의 부장들’과 ‘미스터 주: 사라진 VIP’가 22일 나란히 개봉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두 작품에서 맡은 캐릭터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 한 편에서는 묵직하고 날카로운 카리스마를, 다른 한 편에서는 편안하고 따뜻한 매력을 발산한다.

이성민은 “캐릭터가 다르다는 점에선 안도가 되지만 흥행 면에선 더 부담이 된다”면서 “2018년에도 ‘공작’과 ‘목격자’가 한 주 차로 개봉했었는데, 두 편 다 잘 되긴 쉽지 않더라”고 웃었다. 덕분에 이번 설 연휴는 홍보 스케줄로 바쁘다. “하루에 두 작품 홍보 일정이 같이 잡히기도 하더라고요. 오전에는 이 영화, 오후에는 저 영화 이런 식이죠(웃음).”

‘남산의 부장들’에서의 변신은 놀랍다. 1979년 권력 2인자였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이병헌)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성민)을 암살하기 전 40일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서 이성민은 ‘박통’을 연기했다. 그는 “국민들의 머릿속에 워낙 강렬하게 각인돼 있는 인물이 아닌가. 배우로서 연기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캐릭터였다”고 말했다.

등장하는 순간 움찔하게 될 정도로 싱크로율이 높다. 얼굴 골격부터 닮아보이게 하기 위해 귀 분장을 하고 이에 교정기도 꼈다. 머리 스타일은 물론, 실제 박 대통령의 옷을 만들었던 재단사를 찾아가 의상을 맞췄고, 일상적인 제스처나 걸음걸이도 비슷하게 따라했다. 그는 “실존인물을 모사하는 연기는 처음 해봤다”며 “좀 더 새롭게 표현해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성민이 해석한 ‘박통’ 캐릭터는 “18년 동안 일인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내적 고민과 피로도가 쌓일 대로 쌓인 인물”이었다. “이전에 그분을 다뤘던 드라마들과 다른 부분이 바로 그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후반부로 갈수록 굉장히 피로해하고 힘들어하죠. 그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지고, 주변에 대한 의심도 커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 불안감을 표현하고자 했죠.”

이 작품을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일부 부정적 시선도 있다. 이성민은 “장기집권 중인 최고 권력자와 그를 둘러싼 2인자들의 이야기로 봐주시라. 실제로 이병헌 곽도원 이희준 등과 촬영하면서 ‘너희가 날 정말 좋아하는구나’ 싶을 때가 많았다”고 웃으며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작품의 의도를 알아봐주실 정도로 관객 의식이 성숙해 있다고 생각한다”고 얘기했다.

‘남산의 부장들’이 무겁고 차갑다면 ‘미스터 주’는 경쾌하고 따뜻하다. 영화는 결벽증을 갖고 있어 아무데나 침 묻히고 털 날리는 동물들을 싫어하는 국가정보국 에이스 요원 주태주(이성민)가 불의의 사고 이후 동물의 말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실제 이성민도 주태주와 마찬가지로 동물과 친숙한 편이 아니었다. 극 중 수사를 함께하는 군견 알리와 친해지는 데에도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원래는 동물을 잘 만지지도 못했어요. 알리를 처음 만났을 때도 한 번 만질 때마다 손을 닦곤 했죠. 지금은 괜찮아요. 극 중 알리가 제게 달려들어 얼굴을 핥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다 내려놨습니다(웃음).”

알리를 제외한 판다 호랑이 고릴라 앵무새 독수리 햄스터 등 등장하는 모든 동물들이 컴퓨터그래픽(CG)으로 구현됐다. 촬영 당시에는 녹색 공들을 놓고 동물을 상상하며 연기해야 했다. 이성민은 “동물 CG 기술은 아직 초기 수준이어서 우리 영화에서 거의 처음 쓰였다. 노하우가 쌓여 다음 동물영화를 만들 때 굉장히 도움이 될 거라더라”고 전했다.

물론 CG를 상상하며 연기하는 것보단 배우들과 직접 호흡을 맞추는 게 훨씬 더 즐겁단다. “상대 배우의 눈을 보고 숨 쉬는 걸 느끼면서 연기하는 게 재미있죠. ‘반지의 제왕’ 간달프 역의 배우가 촬영 당시 울었다던데, 그 느낌을 알겠더라고요.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은 거죠. 기술이 좋아질수록 거부할 수 없는 배우들의 숙명인 것 같아요. 미리 경험해본 셈이죠.”

‘미스터 주’는 가벼운 코미디물이라기보다 순수한 아동용 가족영화에 가깝다. 이성민은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행복했다. 흐뭇하게 즐길 수 있는 가족영화가 나온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머니게임’ 촬영을 마친 이후에는 영화 ‘리멤버’ 준비에 들어간다. “또 새로운 작업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계속 그런 작품들만 하게 되네요(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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