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스터리의 제왕’이 과학 주변을 빙빙 돌며 쓴 잡학 에세이

[책과 길] 사이언스? /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은모 옮김, 현대문학, 232쪽, 1만3000원


갈수록 자동차 운전은 쉬워지고 있다. 웬만한 승용차에는 후방 카메라나 후진 경보음 시스템이 장착된 지 오래됐고, 머지않은 미래에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내달릴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세상이 오면 마냥 좋기만 할까. 저자는 “자동차가 사용하기 쉽고 편리해지는 건 바람직한 일”이라면서도 이렇게 적어두었다.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운전자가 이렇게 말하는 시대가 오지 않기를 빈다. ‘내가 그런 거 아니야. 컴퓨터가 그랬어.’”

싱거운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저런 글을 일본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62)가 썼다면 왠지 다시 읽어보게 된다. 히가시노는 기발한 상상력과 탄탄한 스토리텔링으로 ‘미스터리의 제왕’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 작가’라는 수식어도 붙는다. 책을 한국어로 옮긴 김은모씨는 ‘옮긴이의 말’에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사람의 단면을 슬쩍슬쩍 엿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적었는데 실제로 그렇다.

책은 히가시노가 2003~2005년 몇몇 잡지에 연재한 글을 묶은 것으로 과학과 직간접적인 연관이 있는 짧은 글 28편이 담겨 있다. 알려졌다시피 히가시노는 이과 출신 작가다.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고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1985년 갑자기 인생행로를 틀어 전업 작가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책에는 이과 출신 작가가 문단에서 마주한 좌충우돌의 에피소드도 등장하는데, 가령 그는 과학적인 모순 탓에 개연성이 엉망진창이 돼버려도 크게 연연하지 않는 문과 출신 작가들 탓에 황당한 기분을 느낄 때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생각을 고쳐먹었다. 과학적 이론에 연연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멋진 결말을 내놓을 때가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히가시노는 “이과 출신 작가가 유념해야 할 마음가짐”이라면서 이런 문구를 적어놓았다. “과학이란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발상해볼 것.”

이 밖에도 저출산 문제나 다이어트, 중고 서점을 바라보는 심경,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를 다룬 글이 차례로 등장한다. 경쾌한 걸음으로 과학의 주변을 빙빙 돌면서 써내려간 “일상 잡학 에세이”다. 참고로 띠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과학책이 아닙니다. 그냥 재미로 읽어주세요.”

박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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