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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군, 어르신들 손잡고 ‘고소한 복음’ 전해요

구세군 여주교회 참기름 공장 세워 은퇴 시니어들에게 일자리 제공

경기도 여주 현암동의 시니어클럽 참기름 공장에서 지난 20일 한 어르신이 볶은 깨를 착유기에 붓고 있다. 맨 오른쪽은 남세광 구세군여주교회 사관. 여주=송지수 인턴기자

공장에 들어서자 갓 볶은 참깨의 고소한 냄새가 확 들어왔다. 기계가 바쁘게 돌아가더니 황금색 참기름이 샘물처럼 흘러나와 양철통을 가득 채웠다. 흰색 모자와 가운을 착용한 채 참기름을 옮기거나 기계를 닦는 직원은 모두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었다. 경기도 여주의 이 공장은 구세군여주교회(남세광 사관)가 은퇴 어르신들을 위해 세운 참기름 공장이다.

설 명절을 코앞에 둔 지난 20일 공장은 여느 때보다 붐볐다. 전국 각지에서 명절용 선물 주문이 밀려 왔다. 참깨와 들깨를 각각 5~6㎏씩 씻고 볶고 압착해 기름을 짜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40분 남짓. 최신식 자동화 기계로 깨끗하게 관리되는 공장이지만 시골방앗간 못지 않게 바쁘다. 깨가 타지 않고 잘 볶였는지, 이물질은 없는지, 기름의 색과 냄새는 이상이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하는 일은 어르신들의 몫이다.

착유기를 작동하는 김자욱(84·가명)씨는 젊을 적 파이프를 만드는 중소기업 사장이었다. 처녀 총각 직원들이 결혼하면 그보다 뿌듯한 일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사태 때 직원들의 생활비를 마련하다 자신의 것은 챙기지 못한 채 파산했다. 지난해 4월 참기름 공장이 문을 열기 전까지 22년을 일하지 못했다.

김씨를 참기름 공장으로 이끈 건 남세광 사관의 간곡한 권유였다. 혼자 살며 우울해하던 김씨에게 남 사관은 “삶의 의지를 만드는 건 건강한 노동”이라며 일할 것을 청했다. 첫 출근을 위해 집 밖으로 나서던 날 김씨는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 온 무기력함과 무상함에서 벗어나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삶의 재미를 되찾은 김씨는 요즘 교회도 출석한다. 집에서도 매일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린다.

곁에서 참깨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던 권영순(65·여)씨도 젊을 적엔 도자기를 빚는 기술자였다. 57세가 되자 몸이 아파 더는 일할 수 없었다. 무기력에 빠지고 무료해졌다. 지금 권씨는 참기름 공장에 없으면 안 될 핵심 인재다. 깨가 노릇노릇 잘 볶였는지를 맨눈으로 가장 잘 판별하는 참깨 감별사가 권씨다. 권씨는 “동료들과 즐겁게 일하느라 심심할 틈이 없다”며 “깨끗하고 좋은 기름을 사람들에게 드리는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설 명절을 앞두고 참기름 공장에서 일하는 7명 어르신들은 일자리 자체가 가장 큰 선물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람을 만나니 우울하지 않고 몸을 움직이니 건강에 좋다고 한다. 무엇보다 가족들이 안심한다고 했다. 공장 식구들이 부모님의 안부를 꾸준히 챙기고 있다는 안도감 덕분이다.

남 사관은 발령제인 구세군에서는 드물게 19년을 여주에서만 사역했다. 2001년 처음 여주로 와 아이를 돌보는 마땅한 시설이 없자 어린이집부터 만들었다. 지금까지 어린이집을 거쳐 간 이는 300명 이상. 가정을 이뤄 선물을 사 들고 찾아오는 이도 여럿 된다. 50여명 독거 어르신에게 반찬을 배달하기도 한다. 남 사관은 지역의 큰 ‘아빠’이자 ‘아들’이 됐다.

구세군 교역자와 참기름 공장 직원들. 여주=송지수 인턴기자

지난해 여주시에서 ‘시니어클럽’을 만들고 구세군여주교회에 위탁운영을 맡겼다. 교회의 지역사회 사역이 인정받은 셈이다. 교회는 여주시의 도움을 받아 참기름 공장을 비롯해 카페와 텃밭 운영, 육아 보조 등을 시작했다. 이 일로 900여명의 일자리가 생겼다.

이날도 교회는 일자리를 찾아오는 어르신들로 붐볐다. 교회 내 카페에선 바리스타가 된 어르신들이 고소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남 사관은 “정부의 복지제도가 아무리 잘돼 있어도 여전히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며 “가장 낮은 곳에 불을 밝히는 교회의 역할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주=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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