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진 작가는 사막 등 미국에서 접한 풍경을 한지에 인화해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낸다. 사진은 ‘보이스 42’(2019년 작). PKM갤러리 제공

우발적인 사고로 살해범이 되어 도망자 신세가 된 델마와 루이스. 둘은 도망치듯 사막으로 달리며 불안함과 자유로움을 동시에 느끼는데…. 화폭 속에 영화 속 델마와 루이스가 최후를 향해 달려가던 그 사막 풍경이 있다. 죽음의 아가리 같은 사막의 절벽, 무심하게 서 있는 선인장, 외로움을 견디는 잡목 등이 흐릿하게 펼쳐져 있다.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 이정진(59·사진)은 사막이라는 이국의 풍경을 한지라는 동양적인 재료에 인화함으로써 의외의 효과를 만들어낸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PKM갤러리에서 하고 있는 개인전 ‘이정진: 보이스’에서 그 낯선 세계가 주는 위로를 만나보는 건 어떨까.

닥나무를 사용해 만드는 전통 한지는 물기를 빨아들이는 수용성이 탁월하다. 그런 특성 덕분에 한지에 인화한 사막의 풍경은 낮의 열기가 한풀 꺾인 듯 푸근하다. 선인장 가시의 뾰족함도 아프지 않게 다가온다.

작가는 홍익대에서 공예를 전공하고 사진 동아리를 하며 사진을 배웠다. 졸업 후 잡지사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다 예술 사진에 대한 갈증으로 미국 유학을 갔고,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졸업 후 1990년대 초 ‘현대 사진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버트 프랭크의 제자이자 조수로 활동했다.

사막 사진을 찍은 지는 30년이 넘었다. 그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우연히 미국을 횡단하다 사막의 매력에 반했다”면서 “나를 다 벗겨놓은 듯한 느낌, 나를 다 내려놓고 대면해야 하는 대상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연의 끝자락 같은 극한의 풍경을 찍는 일은 일기를 쓰는 것 같은 작업이라고 덧붙였다. 뉴멕시코, 애리조나, 네바다, 유타 등 미국 중남부 지역 여러 주에 걸쳐 사막을 찍었다. 바다의 섬 등 한지에 더 걸맞은 습윤한 자연 풍경도 화폭에 들어왔다. 그는 “제 작업은 시 같다.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사진”이라고 설명했다.

‘오프닝 21’(2016년 작). PKM갤러리 제공

작가는 지금까지 한지에 감광유제를 발라서 일일이 직접 인화를 했다. 그러다 보니 한 장을 찍어내는 데 며칠이 걸렸고 사실상 한 번에 한 장의 작품만 얻을 수 있었다. 작가는 그 작업 과정이 고단해 이번 전시에 처음으로 디지털 방식으로 인화했다. 한 번에 여러 장(에디션)을 찍어낼 수 있게 됐지만 아날로그 방식이 주는 특유의 질감은 사라져 아쉽다는 평가도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개인전 ‘에코-바람으로부터’ 이후 2년 만에 여는 전시다. 3월 5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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