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 총재가 지난 22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 위치한 연맹 사무국 집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2020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태권도의 성공적 개최에 대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 태권도는 도쿄 패럴림픽에서 처음으로 정식종목 지위를 얻었다. 세계태권도연맹 제공
설원에 청년이 서 있다. 청년은 두 발을 어깨 넓이로 벌려 제자리를 찾은 뒤 두 손을 허리춤 앞에 가지런히 모은다. 이제 경기가 시작됐다. 청년은 오른손을 한 번, 왼손을 한 번 절도 있게 지르며 앞으로 걸어 나간다. 사박사박 눈을 밟는 소리가 청년의 걸음을 따라 들려온다. 청년은 곧 호흡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린 기합을 토하며 발을 높게 들어올린다. 기합소리가 겨울 산에 메아리치면 숨죽이고 관전하던 관중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온다.

과연 태권도가 눈 위에서도 선보일 수 있을까. 설원을 한지 삼아 그린 수묵화 같은 이 장면은 아직 정식 경기로 펼쳐진 적이 없다. 하지만 새로운 10년이 지나면, 어쩌면 그 전에 동계올림픽에서 마주할지도 모른다. 조정원(73) 세계태권도연맹 총재는 태권도의 하계올림픽 정식종목 유지에 만족하지 않고 동계올림픽 진입까지 구상하고 있다.

아직은 조 총재의 여러 구상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뚜렷한 목표의식과 저돌적인 추진력은 종종 상상에 머물던 일들을 현실로 바꿔놓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가라테보다 먼저 이뤄낼 수 없을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던 태권도의 정식종목 도입이 20년 전 시드니올림픽에서 실현됐던 것처럼.

지난 22일 서울 중구 태평로 연맹 본부 집무실에서 만난 조 총재는 “세계인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태권도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며 “태권도가 설원에서 펼쳐질 수도 있다. 품새 종목이라면 가능하다. 2024 평창 동계 유스올림픽에서 눈밭 위의 창작 품새를 도입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저 막연한 공상이 아니다. 조 총재는 동계 종목으로서의 태권도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구상해 왔다.

한국 태권도 국가대표 이대훈(오른쪽)이 지난해 12월 6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월드 그랑프리 파이널 남자 68㎏ 이하급 준결승전에서 미르하셈 호세이(이란)에게 돌려차기를 성공시키고 있다. 세계태권도연맹 제공

“눈밭 위에서 멋지게 뛰어오르고 발기술을 발휘하는 모습, 얼마나 멋있겠습니까. 복장도 겨울에 맞게 변화를 줘야 할 테지요. 가능성이 없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브레이크댄스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것이라고 확신한 사람이 과거에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요. ‘스노 태권도’ 정도면 어떨까요. 2026년 이탈리아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진입을 목표로 삼고 연맹은 연맹대로 준비하고 연구해야겠죠.”

조 총재는 2004년 연맹 창립자인 고 김운용 전 초대 총재의 후임자로 선임된 이래 태권도의 하계올림픽 정식종목 지위를 2024년 프랑스 파리 대회까지 7회 연속으로 유지했다. 도쿄패럴림픽 사상 첫 정식종목 도입도 이뤄냈다. 부임 첫 해 173개국이던 연맹 회원국은 이제 210개국으로 늘었다. 태권도 인구는 약 1억명 이상. 글로벌 스포츠로 자리를 잡은 태권도의 발전상을 보면 동계올림픽 진입이 비현실적인 목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물론 시대의 흐름에 맞는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 태권도는 서양인의 호기심을 유발했던 동양무술의 한계에서 탈피해 현대화·스포츠화를 준비하고 있다. 연맹은 올해를 그 원년으로 삼고 있다. 7월 25일부터 나흘간 일본 지바현에서 펼쳐질 도쿄올림픽 태권도에서 기존의 도복을 대신해 기능성을 높인 스포츠웨어와 4차원(4D) 리플레이 카메라를 처음으로 선보인다.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 줄 시각적인 즐거움과 판정의 공정도를 더욱 높이자는 취지다. 아직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태권도는 재미없다’는 세계인의 인식을 전환하겠다는 목표에서 시도되는 변화다.

조 총재는 “관중에게 외면을 받고, 중계방송 시청자의 흥미를 유발할 수 없는 종목은 살아남을 수 없다”며 “태권도는 전자호구를 도입한 2012 런던올림픽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맞았다. 런던 이후의 또 다른 변화를 도쿄올림픽을 마치고 구성할 연맹 특별위원회에서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맹이 시도하는 변화는 젊은이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올림픽에서 점차 멀어지는 2000년 이후 출생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비단 태권도만의 과제가 아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0~20대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낼 목적으로 종목의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올여름 도쿄에서 펼쳐질 BMX(자전거 곡예),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 도입될 브레이크댄스 같은 ‘어반게임(도심 체육)’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진입하고 있다.

조 총재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태권도를 보급하기 위해서는 결국 태권도도 젊어져야 한다”며 “연맹이 월드 어반 게임스에 태권도를 쇼케이스 종목으로 진입시킨 이유도 그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올림픽 28개 정식종목 중 아시아에서 탄생한 종목은 태권도와 유도뿐이다. 그중 한민족의 국기인 태권도는 한국이 종주국 입지를 지닌 유일의 종목이다. 태권도의 발전에서 북한과의 협력도 중요한 과제다. 조 총재도 이를 마다하지 않는다. 조 총재는 “북한 주도의 국제태권도연맹과 마음을 터놓고 하나의 태권도로 향하자는 의지를 공유하고 있다.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합동 행사를 가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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