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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한국 사회의 수준 보여준 신종 코로나 사태

배병우 논설위원


정부, 전염병 대응도 ‘정치적 결정’… 진천 시위 사태 불러
시민은 비이성적 행태, 권위 폄하, 신뢰 부족, 극도 배타성
위기에 드러난 살풍경한 민낯
우리는 중국을 후진적이라고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개인도 그렇지만 한 사회나 나라의 실력과 수준도 위기에 드러난다. 공포와 고통 속에서도 평정을 유지하고 매뉴얼(법과 기준)대로 행동할 수 있는 개인이나 공동체가 생존하고 번성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신종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나타난 대한민국의 수준은 어떤가. 정부와 시민사회 모두 낙제다. 중국을 후진적이라고 비난할 자격이 없다.

그저께 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의 봉변이 이를 한눈에 보여준다. 김 차관은 이날 충북 진천 주민들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물병에 맞았다. 옷도 찢겼다. 중국 우한 거주 교민들의 격리 수용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하러 가서다. 현장 사진에는 이리저리 밀려다니다 뒤 머리카락을 잡힌 김 차관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김 차관이 필사적으로 빠져나가는 모습, 주민들에게 찢긴 노란색 비상근무복이 찍혔다.

신종 전염병은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기에 당연히 불안하다. 그렇더라도 이건 아니다. 우한에서 들어오는 교민들은 환자가 아니다. 고열과 구토·기침·인후통·호흡곤란 등 감염 의심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탑승할 수 없다. 수용 시설에는 방역 장비와 인력이 갖춰지고 경찰이 배치돼 외부와 차단된다. 무증상자들을 외부와 차단되고 방역 체계가 갖춰진 곳에 수용해 잠복기를 넘기는 것이 격리 수용의 요지다. 전염병 권위자인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인근 지역사회에 (바이러스가) 전파될 확률은 제로”라고 한다. 그런데도 진천 주민들은 우리 동네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단순히 항의하거나 시위를 한 정도가 아니다. 정부를 대표해 대화하겠다고 찾아온 공직자에게 폭력까지 행사했다. 공직에 대한 신뢰, 공권력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다.

다른 시민들도 비이성적이라는 점에서 는 도긴개긴이다. 한 식당 주인은 조선족 종업원이 7~8년 전 한국에 들어와 죽 살았다면서도 “이 정도면 알아서 가게에 안 나와도 되련만…”한다.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를 했지만, 가족같이 정들었다면서도 방송에 대놓고 이렇게 말한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는 “조선족 도우미가 이번 명절 연휴에 중국에 가지 않은 걸 알지만 계속 오게 해야 할까요”하는 글이 올라왔다. 구체적인 상황이나 맥락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중국인=위험’으로 일반화한다.

중국 교포가 많은 서울 영등포·구로 지역의 어떤 어린이집 결석률은 80%에 달한다고 한다. 일부 보수단체는 청와대 앞에서 중국인 입국 전면 금지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한 식당은 아예 한자로 ‘중국인 출입금지’ 문구를 붙였다. 한 배달 업체 노조는 중국인 밀집 지역에는 배달을 금지할 것을 회사에 요구해 논란이 됐다. 과민 반응 정도가 아니라 비이성적 행태다. 같은 민족인 우한 교민들의 처지를 배려할 생각이 없는 시민들이 중국과 중국인을 어떻게 보고 대할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중국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이제 비난을 넘어 혐오로 향한다. 초동 방역에 실패해 전 세계에 피해를 줬다고 해서 ‘민폐 국가’로 지칭하는 정도는 약과다. 중국인의 식습관과 문화적 전통을 조롱하고, 노골적으로 인종적 편견을 표출하는 댓글이 넘쳐난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 신종 코로나에 대한 컨트롤타워 문제만 해도 그렇다. 지금처럼 예기치 않은 상황, 위기 시에는 전문성을 가진 관료들의 판단에 힘을 실어주는 게 맞는다. 대통령의 비서 조직인 청와대가 컨트롤타워로 자처하는 건 난센스다. 이런 위기에 대응하라고 관료와 부처가 있는 것이다. 진천 사태도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관료들은 애초 여러 가지를 따져 우한 교민 수용시설 입지를 천안으로 결정했을 것이다. 이를 총선과 천안 시장 보궐선거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등 정치가 개입했다. 하루 만에 수용시설이 진천과 아산으로 바뀌면서 사달이 났다. 이번 정부의 특징인 ‘모든 사안의 정치화’가 이번 전염병 대응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법과 원칙보다 정치적 고려가 우선되는 사회에서 배려와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은 힘을 잃는다. 관료적 합리성이 발휘돼야 할 영역에도 정치가 개입하면 시민들이 정부를 믿고 따를 유인이 줄어든다. 당연히 권위와 공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존중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다른 사회구성원을 의식하고 대화로 해결하는 대신 논쟁과 싸움을 일으켜 정치적 주목을 받으려는 경향도 강해진다. 그 후에 정치적 거래를 하는 게 이익이기 때문이다. 분노와 적대감의 표출을 꺼리지 않고 폭력까지도 불사한 진천 시위 사태가 상징하는 세태는 이런 잘못된 정치와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신종 코로나 사태가 드러낸 한국 사회의 민낯은 볼썽사납다. 그 모습은 합리성 부족, 극도의 배타성, 바닥으로 떨어진 신뢰, 권위에 대한 폄하, 동료 시민에 대한 배려 결여 등이다. 이 살풍경을 어떻게 바꿔 갈지 고민할 때다.

배병우 논설위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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