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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 기자 성기철의 수다] 독서의 힘


유시민이 쓴 명문 항소이유서
성공한 사람은 모두가 독서광
지식, 지혜, 마음의 풍요 제공
검증된 고전과 시 가까이 하길


교과서가 아닌 책을 내가 처음 제대로 접해 본 건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다. ‘고전 읽기’란 프로그램이 학교에 도입돼서다. 교육부 독서진흥정책 일환으로 시행되지 않았을까 싶다. 도서관조차 없는 시골 초등학교에서 학년별로 10여명씩 뽑아 방과 후 권장도서를 돌려가며 읽도록 했다. 논어이야기, 예수이야기, 보물섬, 파브르곤충기, 로빈슨크루소 등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게 끝이었다. 그 흔한 세계문학전집 한 번 제때 읽지 못하고 자랐다. 책벌레가 아니었나 보다.

세월이 흘러 신문기자가 되었고, 곧바로 유시민이 쓴 항소이유서를 만났다. 1985년, 서울대 학원프락치 사건에 연루돼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은 그가 변호사 권유로 감옥에서 직접 썼다는 항소이유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불과 26세 청년이 200자 원고지 100페이지가 넘는 긴 글을 14시간에 걸쳐 퇴고도 없이 단번에 써냈다니, 그렇게 쓴 글이 서울지법 판사들이 돌려 읽을 정도로 화제가 됐다니….

당시 내가 내린 결론은 오로지 ‘독서의 힘’이었다.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지 않고서는 정치와 역사, 법이 어우러진 그런 명문을 결코 쓸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나 할까. 글로 먹고사는 직업을 택했으니 나도 책 많이 읽어야지 다짐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세월이 한참 지나서야, 칼럼을 쓰기 시작하고서야 독서의 목마름을 느끼기 시작했다. 많이 늦었지만 언젠가부터 독서는 내게 피할 수 없는 동반자가 됐다. 지금은 그 향기를 제법 즐길 줄 아는 편이다.

우리네 인생에서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독서와 관련한 유명인들의 강조점은 체험에서 우러나온 말이기에 수백번 들어도 거슬리지 않는다. ‘책은 청년에게 음식이 되고 노인에게는 오락이 된다. 부자일 때는 지식이 되고 고통스러울 때는 위안이 된다.’(키케로)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모두 책에 있다. 내가 읽지 않은 책을 찾아주는 사람이 바로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이다.’(에이브러햄 링컨)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이다. 하버드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이 독서하는 습관이다.’(빌 게이츠) ‘내가 백악관에서 8년을 버틴 비결은 독서였다.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책을 읽었으며 독서는 나 자신을 안정시켜주는 특별한 힘이었다.’(버락 오바마)

독서는 훌륭한 스승과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게 하며, 저자와의 창조적 만남을 통해 세상을 헤쳐 나가는 지식과 지혜를 무궁무진하게 제공해 준다. 책을 깨달음의 원천이라 부르는 이유이겠다. 또 정서 함양과 타인과의 소통에 적잖은 도움이 된다. 책은 나에게 인생살이 상담해주는 최고의 친구라 해서 결코 틀린 말이 아닐 듯하다.

우리는 한 권의 책, 아니 책 속의 의미심장한 문장 하나가 인생을 완전히 바꾸게 하는 사례를 흔하게 접한다. 시 한 구절이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의 나래를 펴도록 안내하기도 한다. 그래서 독서는 기쁨과 간절함을 갖고 해야 하는가 보다. 실학자 이익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랑하는 어머니와 오랫동안 이별했다가 다시 만난 것처럼 독서하라. 아픈 자식 치료법을 묻는 사람처럼 질문하고 토론하라.”(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 이지성은 “이익에게 책은 책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가족이었다”고 평한다.

책에는 위대한 길이 열려 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치고 책을 멀리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등 미국의 성공한 대통령은 하나같이 책벌레였으며 나폴레옹, 윈스턴 처칠, 조지 소로스, 오프라 윈프리도 독서광이었다. 세종대왕, 정약용, 김구, 안중근, 박정희, 정주영, 김대중도 평생 책을 끼고 살았다.

김대중은 옥중생활 중 철학 신학 정치 경제 역사 문학 등 다방면의 서적을 탐독했으며, 그때의 깨달음이 훗날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 귀중한 자산이 됐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생전 소장 서적이 3만권이 넘었다. 그는 자서전에 “독서와 사색과 일을 중단하면 그것으로 인생을 다 산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 마지막 날까지 나는 계속 공부하고 생각하고 일할 것이다”라고 썼다. 보통 사람으로선 족탈불급이겠지만 흉내라도 내 보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나이깨나 들었다는 뜻일까. 독서의 진정한 효능은 지식이나 지혜를 얻기보다 마음의 풍요를 구하는 데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검증된 고전과 산뜻한 인문 서적을 꾸준히 읽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법정 스님은 일생 단 한번 주례를 섰다는데 그때 신랑신부한테 했다는 조언 한마디가 내겐 울림이 크다. “한 달에 산문 2권과 시집 1권씩은 꼭 읽으세요. 여러분 가슴에 녹이 슬면 삶의 리듬을 잃게 됩니다. 읽은 책들을 나중에 자녀들에게 삶의 자취로, 정신으로 물려주면 그 어떤 유산보다 값질 것입니다.”

‘낭만 정객’이라 불렸던 김종필은 문학을 포함한 인문학에 남다른 식견이 있었다. 험난한 정치판에 그가 남긴 언사는 그 자체가 시이고 예술이고 철학이다. 역시 독서 덕분이다. 그는 공주중학 다닐 때 ‘1일 1권 독서’를 실천하고자 다음날 학교 수업에 들어가지 못할지언정 밤을 새워서라도 목표량을 채웠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평소 그의 자신감과 여유는 오로지 독서에서 비롯된 것이라 본다.

꼰대란 소리 들을 각오하고 요즘 이런 말 자주 하고 다닌다. “독서만큼 중요한 게 없다. 독서를 많이 해야 아이들 공부 잘할 수 있고, 젊은 사람들 지식 풍부해지고, 노인들은 영혼이 자유로워진다.”


성기철 경영전략실장 겸 논설위원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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