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가까워지면서 정치권 및 정치지망생의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만일 신종 코로나의 확산이 아니었다면 선거투쟁이 훨씬 본격화됐을 것이지만, 지금도 명함 나눠주기 등 예비후보들의 경쟁은 치열해 보인다. 그런 가운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도 점차 잦아지고 있다. 곳곳에서 부정선거운동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선거연령이 만 18세로 낮춰짐에 따라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선거운동이 논란을 빚고 있다. 신년인사를 빙자한 선거운동 음성메시지가 문제 되는가 하면 유튜브 등 온라인 선거운동의 허용 범위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가 이전투구의 진흙탕에도 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의 선거는 축제가 아닌 전쟁이 된 지 오래다.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갈릴 뿐 아니라 승리를 위해 불법을 서슴지 않는 것이 그러하다. 승자독식의 구조에 따라 승자가 모든 권력을 독점할 수 있으므로 불법을 통해서라도 승자가 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것이다.

물론 불법선거운동으로 의원직을 상실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하지만 대부분 후보자들이 선거비용 초과 등 불법선거운동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일 정도로 받아들이고, 나중에 그것이 문제 될 경우에는 다른 후보자도 다 그런데 재수 없어서 걸렸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이러한 불법이 얼마나 만연되어 있는지를 방증한다.

우리처럼 선거제도 변화를 많이 겪은 나라도 흔치 않을 것이다. 대통령선거가 국회 간선, 국민 직선,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선, 대통령선거인단 간선, 다시 국민 직선으로 바뀐 터에 최근 결선투표제 도입이 논의되고 있으며, 국회의원 선거제의 변화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선거가 대의민주주의의 첫 단추라는 점이며, 과거 이를 제대로 끼우지 못한 탓에 3·15부정선거와 4·19혁명이 있었다는 점, 그 교훈으로 지금까지도 선거관리위원회가 헌법상 독립기관으로 자리하게 됐고 관권선거에 대해선 어느 나라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국민과 법제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여당 옹호 발언이 선관위의 경고를 받았던 것도, 이를 부당하다고 생각한 노 대통령의 헌법소원심판청구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이자 정치인으로서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갖지만, 대통령으로서의 선거중립의무가 더욱 중요하다고 판시했던 것도 그러한 역사적 경험과 교훈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선거에 즈음해 수많은 후보자가, 나아가 이들을 지지하는 정당과 세력이 불법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그래서 권력을 손에 쥐기만 하면 모든 것을 쉽게 덮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과거 그런 사례도 적지 않았고….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선거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불법이 아닌 준법이 당연시되며, 돈과 권력이라는 배경이 아니라 후보자 개인의 능력과 도덕성이 평가되는 선거가 돼야 한다. 선거라는 첫 단추를 제대로 끼워야 민주정치가 정상화될 수 있으며, 경제 사회 문화의 안정적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선거의 승자가 가려져야 하며, 이에 모든 사람이 승복할 수 있어야 대한민국이 다시금 도약할 수 있다.

선거의 정상화를 위해 매니페스토 운동이 벌어진 바 있지만,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후보자들로서는 선거의 당락이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므로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당선될 수만 있다만 모든 것을 감수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모든 것을 제대로 판단해서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할 모든 책임을 진다고 할 수 있을까.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후보자들의 책임을, 또 유권자의 책임을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제도 자체의 개선도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승자독식의 정치제도에서, 이른바 ‘올인’을 강요하는 구조 속에서 합리적인 선택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고, 불법을 무릅쓰고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후보자들에 의해 이른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상당 부분 제도의 탓이기 때문이다.

결국 선거문화가 바뀌기 위한 전제조건은 선거제도의 개혁인 셈이다. 합리적인 선거제도에 의해 승자독식이 아닌 분권과 협치가 가능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하면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추진했던 것은 나름의 합리적 선택이었다.

그런데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수정안은 지역구의 기득권을 그대로 인정하는 가운데 47석의 비례대표의석 중에서 30석만 연동형으로 한다는 기묘한 안이었다. 선거제도의 일부 변경은 있었지만, 개혁은 없었던 셈이다. 대한민국 민주정치의 악순환을 깨뜨릴 계기는 이번에도 마련되지 못했으니, 언제나 새로운 발전이 가능할 것인지….

장영수 고려대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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