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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홍규의 문학스케치] 취향을 넘는 독서

손홍규 소설가


당연한 일들이 문득 낯설게 여겨지는 경우가 있듯이 글을 쓸 때 내가 쓰는 이 글의 최초의 독자가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러운 순간이 있다. 그러면 글을 쓴다는 것과 글을 읽는다는 것이 서로 다른 행위의 표현이 아니라 한 가지 행위의 서로 다른 표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면서 글을 읽게 되듯이 글을 읽으면서 글을 쓴다고도 할 수 있다. 단순히 활자만 읽는 독자는 없을 테니 말이다. 단어와 문장에 깃든 이미지를 떠올리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며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의 공백을 채우면서 읽게 되므로 독서 역시 하나의 창작이기도 한 셈이다. 그러므로 독서와 창작이 완전히 똑같은 행위는 아닐지라도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독서 역시 글쓰기만큼이나 중요할 수밖에 없다. 글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이 무기력을 벗어나기 위해 내가 가장 자주 하는 일은 바로 독서다.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영감을 얻고 용기를 낸다. 그동안 다른 작가들의 훌륭한 소설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장편소설 ‘서울’을 쓸 때도 그러했다. 암울하고 묵시론적인 세계를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인간적인 희망을 다룬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이런 세계를 은유하는 배경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한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소설의 첫 문장조차 쓸 수 없는 상태였다. 그즈음에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를 읽게 되었고 그 소설에 펼쳐진 폐허, 평소라면 너무 비현실적이라 여겨 무심코 지나쳤을 가상의 세계에 마음이 끌렸다. 나는 용기를 내어 폐허가 된 서울로 뛰어들었다. 나중에 다시 ‘로드’를 읽어본 나는 소설의 배경을 오독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오독이 내 글의 원천이 되었음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이런 사례는 흔할 것이다. 사르트르가 그의 저서 ‘존재와 무’를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 헌정했을 때도 그랬다. 하이데거는 사르트르의 글을 읽은 뒤 그는 나를 오해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앞세대에 대한 오해와 오독이 다음 세대를 반드시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할 테다.

마르케스는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쓰던 시절 자신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작가로 윌리엄 포크너를 꼽았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뱃길에서 포크너의 소설을 읽고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알게 되었노라고 밝힌 적이 있다. 또한 마르케스는 자기 작품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로 윌리엄 포크너만이 아니라 제임스 조이스와 버지니아 울프를 꼽았다. 마르케스가 언급한 세 작가의 공통점은 의식의 흐름이라는 모더니즘 기법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고개를 갸웃 기울일 수밖에 없다. 마르케스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라 불리는 남미 특유의 세계관을 반영한 스타일의 소설가였다. 그와 그에게 영향을 준 작가들 사이에는 유사점보다 차이점이 크다. 비슷해 보이기는커녕 서로 다른 토대에서 태어난 전혀 다른 스타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만약 마르케스가 진실을 말한 거라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마도 마르케스는 다른 작가들이 작품에서 이룬 업적에만 영향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작품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 소홀히 다룬 것들에서도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그들의 성취를 모방하고 답습하는 데 그쳤다면 아류작만 써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르케스는 그들과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작품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러므로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스타일 사이에는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의미심장한 영향 관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독서의 한 가지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독서는 글쓰기의 연속이기도 하다. 자신의 글쓰기에서 부딪힌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그런 독서를 통해 얻게 되는 실마리는 어떤 경우 오히려 무관해 보이기까지 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내 글쓰기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는 뜻밖의 순간에 찾아온다. 매번 걷던 길, 익숙한 길, 잘 아는 길로만 다녀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순간이기도 하다. 한 권의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겠지만 만약 지금까지 내 취향에 어울리는 글만 읽어왔다면 내 글쓰기에 영감을 줄 수도 있는 독서의 가능성을 스스로 던져 버린 셈이다. 내 취향이 아니라며 책을 덮기 전에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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