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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바이러스와 싸우는 법

태원준 논설위원


이탈리아 국립전염병연구소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환자의 세포에서 바이러스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순수한 샘플이 확보되자 이를 각국 연구진이 활용토록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호주 멜버른대학 감염·면역연구소는 감염자 시료에서 바이러스를 추출·배양해냈다. 백신 개발에 착수했고, 역시 세계보건기구(WHO)를 통해 샘플을 공유했다. 미국 일본 홍콩 연구진도 바이러스의 정체를 파악하고 치료법을 찾기 위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다국적 기구인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PI)은 16주 안에 백신 완성을 목표로 접근법이다른 세 갈래 연구를 지원하고 나섰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중국 과학자들이 첫 발병 후 2주 만에 이 바이러스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당국이 신종 바이러스 출현을 알린 이들을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조사하는 악조건에서도 현지 의학계는 이 유전자를 미국 국립생명정보학센터에 등록해 세계 과학자들이 볼 수 있게 했다. 이를 통해 신종 코로나가 박쥐의 코로나바이러스와 96% 유사하다는 사실, 세포에 침입할 때 접촉하는 단백질 부위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비슷하다는 사실 등이 밝혀졌다. 또 환자가 발생한 모든 나라에서 자국 진단법을 WHO 홈페이지에 공개하며 대응의 효율성을 높여가고 있다.

이런 모습은 2002~2003년 8개월간 8273명이 감염되고 775명이 사망한 사스 때와 확연히 달라졌다. 당시는 중국 정부의 은폐로 발병 후 몇 달이 지나서야 WHO에 보고됐고 글로벌 대응체계도 그만큼 늦게 가동됐다. 이번에도 당국은 초기 대응에 소극적이었지만 이를 넘어선 것은 사스 이후 세계 과학계가 구축한 소통 시스템 덕이었다. 바이러스 유전자를 공유하는 온라인 공간을 만들었고, 소셜미디어로 실시간 정보 교류가 이뤄지게 했다. 감염병 연구 내용을 논문으로 작성하고 학술지에 보내고 출판하는 과정은 바이러스 전파 속도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모든 절차를 생략하고 연구 결과를 즉시 게재하는 ‘출판 전 공개 사이트’ 메드아카이브(medRxiv)를 열었다.

어느 단체, 어느 연구소, 어느 나라 혼자서는 감염병을 막을 수 없다는 인식, 함께 싸우지 않으면 모두 당한다는 위기감이 학자들을 움직이게 했다. 감염병 재난영화에서 가장 잘못된 설정은 세상을 구하는 영웅적 인물이 등장하는 대목이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그런 영웅은 없다. 모두가 영웅이 돼야 한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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