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잡기 위해 대중을 상대로 벌이는 흥정과 거래의 시간,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나라가 두 진영으로 나뉘어 적대관계에 있는 상황에서 이번 선거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궁금하고 걱정스럽다. 궁금한 이유는 국민이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이런 상황에서도 건전한 정치적 상식을 갖고 있는지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21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역시 한 번도 겪어보지 않는 신권위주의가 대부분 민주적 선거제도를 통해 선출된 권력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선거는 아무튼 민주주의의 핵심이며 동시에 상식의 시금석이다.

민주주의가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국민의 뜻을 모아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제도라고 한다면 상식은 차이와 이견을 넘어서 특정한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설령 민주주의 제도가 형식적으로 실행되고 있다 하더라도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다면 내용은 없고 껍데기만 남아있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초래된다. 여전히 조국 사태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 우리 사회를 진단하면 우리 사회는 ‘죽은 상식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상식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과 능력이다. 우리가 매일매일 겪는 일상사와 관련해 내리는 실천적 판단과 그 기준이 거의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일 때 우리는 그것을 ‘상식(common sense)’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거짓말이 나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설령 거짓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하더라도 거짓은 거짓이다. 이것이 상식이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표창장을 위조한 것은 나쁜 일이다. 굳이 복잡한 공정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이러한 행위는 국민의 정의감을 건드린다. 이것이 상식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권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더라도 나쁜 것은 나쁜 것이다. 그러나 온갖 매체를 동원해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이념 독선주의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자 하는 대중의 확증 편향과 만나면 상식은 파괴된다. 국민이 건전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사실에 대한 심층적 보도를 하는 레거시 미디어의 ‘문지기(gatekeeper)’ 기능은 이미 마비되었다. 사람들은 다양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기가 원하는 사실을 얻는다. 문제는 팟캐스트, 유튜브 방송 같은 매체는 이미 음모론, 허위정보, 페이크 뉴스에 감염돼 있다는 사실이다. 감정적 믿음이 객관적 사실보다 우선하는 곳에서 상식은 위험에 처한다.

이번 선거는 정권심판 또는 야당심판이라는 말이 암시하듯 정책은 실종되고 선전과 선동이 난무하는 선거가 될 공산이 크다. 모두 호불호의 클릭 수를 늘리기 위해 국민의 감정과 정서를 공격적으로 파고들 것이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 적대하는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성숙할 수 없다. 이런 파국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여기서 다시 ‘상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공동체를 구성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공유하는 옳고 그름에 관한 감각으로 돌아가야 한다. 상식은 ‘공통감각’이기 때문에 복잡한 논증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도 인정할 수 있는 자명한 진리이다. 말의 마술사들이 아무리 현란한 수사학으로 거짓을 진리로 위장하더라도 거짓을 거짓으로 밝혀내는 것은 상식이다.

영국 소설가 제인 오스틴의 장편 데뷔작인 ‘센스 앤드 센서빌리티’는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진영의 벽을 허물고 공통감각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이 소설이 그리고 있는 대시우드가의 두 딸은 정반대 기질을 갖고 있다. ‘센스(sense)’를 대변하는 언니 엘리너는 매사 신중하고 합리적인 반면 ‘센서빌리티(sensibility)’의 대변인 동생 메리앤은 감성이 풍부하고 열정적이다. 엘리너는 자신의 욕망과 그 좌절을 분별력을 갖고 책임 있고 품위 있게 처리하지만 자신의 욕망에 압도된 메리앤은 사랑이 좌절될 때 극단적으로 무너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메리앤의 감상주의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는 점이다. 엘리너는 건전한 상식 덕택에 현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면 동생은 극단적 감상주의로 말미암아 현실과의 관계를 상실한 것이다.

편 가르기가 더욱 심해질 이번 선거에서는 감정과 감상주의가 기승을 부릴 것이다. 사실을 호불호의 감정으로 대체하는 페이크 뉴스가 범람하는 상황에서 정책 하나하나를 뜯어보고 투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상식 속에 들어 있는 최소한의 이성이다. 생각과 가치가 다르더라도 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상식이다. 상식은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한다. 자신이 속한 진영에 따라 옳은 것이 그른 것이 되고 그른 것이 옳은 것이 된다면 상식이 죽은 사회다. 진영의 이념과 독단으로부터 해방되면 우리는 사태를 비교적 맑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우리는 편 가르기의 진영논리와 그것을 부추기는 감상주의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

이진우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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