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가 남긴 유산을 놓고 벌어지는 재벌가의 치열한 암투는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대표적 클리셰다. 넘치는 부를 가지고도 악다구니처럼 치고받는 모습을 보며 “나 같으면 물려받은 재산으로 놀고먹고 세상 행복하게 살 텐데” 갸우뚱해본 경험, 한 번쯤은 있을 거다. 우리네 ‘보통사람’들에게 대물림이니, 승자독식이니 하는 아귀다툼은 먼 나라 이야기일까.

한진가(家) ‘남매의 난’이 한창이다. 장남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체제에서 경영 복귀가 요원하다고 생각한 누나 조현아 전 대한한공 부사장은 외부세력과 손을 잡고 전문경영인 제도의 도입을 명분 삼아 반기를 들었다. 어머니와 동생이 캐스팅보트로 부상하는 듯했지만 이들은 결국 ‘가족’을 앞세워 조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이미 오너일가의 진정성에 대한 여론의 신뢰가 반복된 오너리스크로 훼손된 상황에서 누구의 명분이 더 정당한지는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핵심은 조 전 부사장이 고 조양호 회장의 유고 과정 중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고, 인생은 타이밍이기에 이후 진행된 경영 승계 과정을 불공정 혹은 불평등하다고 여겼다는 점이다.

혹자는 호텔·레저 등 자신이 주력했던 계열사 사업에 대한 애착과 당위의 발로라고 말한다. 나아가 지분 상속만으로 야기되는 막대한 상속세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회사 내 자리를 꿰차고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를 들기도 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그들만의 리그에서도 이미 가진 건 가진 거다. 밀려났을 때의 금전적 손해나 불이익을 피하기 위함이 아니겠나”라고 설명했다.

너무 먼 얘기 같다면 필부필녀의 부동산 셈법에 한 번 대입해 보자. 우리 주변에서 5억원에 산 집이 10억원을 돌파해 두 배가 넘는 자산으로 증식됐다 한들 나라에서 세금을 걷어간다면 누가 ‘당연히 내야죠’ 하고 기꺼워할까. 수억원의 자산 증식은 자신의 혜안에 따른 투자의 결실이라지만, 이에 대한 과도한 과세는 일종의 생돈이 나가는 격이기에 ‘사회주의냐’는 비판부터 나오지 않던가.

그 주체가 젊은 세대라면 수억원의 종잣돈을 마련할 수 있었던 배경, 부모의 경제적·환경적 지원에서 비롯된 ‘출발점의 차이’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정권 들어 개천에서 용이 나오던 386세대의 신화가 각종 사다리 걷어차기와 함께 조소 혹은 환상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재벌 집안을 비롯해 TV에서만 보던 극소수 상류층만이 대물림의 수혜자나 희생양이 되는 시대는 압축성장의 종말과 함께 막을 내렸다.

회사원이면서 경제학을 연구하고 있는 조귀동씨는 저서 ‘세습 중산층 사회’에서 현재 20대인 1990년대 생을 ‘초격차 세대’라고 지칭했다. 부모 세대인 50대 중산층으로부터 학력과 노동시장의 지위를 물려받은 첫 세대로서 출신학교와 직업, 소득, 자산, 결혼 등 사회적·문화적 경험에서 다중의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기실 20대 집단은 과거 ‘세대’로 지칭돼온 선대 집단들처럼 공통된 가치지향으로 묶이지 않음을 우리는 남북 단일팀 논란과 혜화역 시위, 조국 논란,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사태 등 다양한 사례로 확인해 왔다. 남녀 간 정치적 양극화, 정치적 비당파화의 만연, 진보 담론에 대한 냉소적 반응, 삶의 안정성에 대한 대극적 태도 등은 모두 20대 집단 안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분화의 지점들이다.

조씨는 그 기저에 “20대 집단 내부의 격차는 ‘능력’의 격차로 포장된 ‘결과’의 격차이면서 동시에 ‘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계층’의 격차”가 깔려 있다고 말한다. 멀리 재벌 2세까지 가지 않아도 평범한 이들의 일상에서, 심지어 초등학생조차 ‘휴거(휴먼시아+거지)’와 ‘개근거지’를 가르는 사회. 재벌에서 상류층으로, 중상위층으로, 중산층으로, 불평등의 대물림은 우리의 무관심 속에 ‘남의 일처럼’ 이미 현실에 내려앉았다.

정건희 산업부 기자 moderat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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