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습격이 매섭다. 10일 현재 전 세계 사망자는 900명을 넘어섰고, 감염자는 4만명을 훌쩍 넘었다. 총 29개국에서 감염자가 나왔고, 지난달 30일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적인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과도한 불안을 갖지 말라’는 대통령의 메시지가 무색하게 국내에서도 확진자와 의심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무증상 전파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25번 환자가 나왔으니 지역사회 감염 우려는 더 커질 것이다.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의 모습은 일상이 되었고, 소비를 잠재웠으며, 생산라인은 중단됐다. 학교는 개학을 미루고, 감염자에 노출된 백화점과 일터는 휴업에 들어갔다. 서울 상권은 유령도시로 변하고 있다. 회식을 취소하고 여행을 미루는 모습도 일상의 풍경이 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 못지않게 ‘혐오 바이러스’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우한 폐렴 포비아’라는 진단이 나왔다. 바이러스 진앙지에서 건너온 중국인을 타깃으로 한 집단적 대응이다. 중국인을 기피하고 낙인찍는 혐오의 몸짓이라는 해석이다. 신종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중국 공포증, ‘시노포비아’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무작정 중국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중국 문화를 비하하거나, 중국인 퇴출 요구까지 서슴지 않는 국민이나 정치인들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또 이런 막연한 두려움이 국내 확진자에게 향하고 신상털이에 근거없는 비난까지 더해지니 적색등의 징후임이 분명하다. 혐오의 기운이 일어나고 보편적 인권이 힘을 잃는다.

하지만 불안과 공포에 휘말려 혐오와 ‘정당한 거부감’을 구별하지 못한다면 그 또한 우리에게 치명적이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혐오를 “특정 집단을 병적이고 열등한 존재로 낙인찍는 편견”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중국인 관광객 출입금지 결정은 중국인을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편견에서 나온 걸까? 중국인 한시적 입국 금지 청원에 동의한 70만의 국민은 중국인을 병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혐오주의자’인가? 그렇지 않다. 혐오의 정의와 실제 행동 간 거리는 새로운 개념의 필요성을 일깨운다. ‘정당한 거부감’을 제안한다. ‘정당한 거부감’은 국제적 비상사태 속에서 한 국민이 내면의 욕구를 자연스럽게 표현한 것을 가리킨다. 내 가족과 이웃의 안전을 내세우는 것은 보편적 인권의 또 다른 표현이자 인간의 자연스러운 ‘니즈(needs)’다. 표현의 결과가 차별로 의심되고, 단기적 이득에 반하는 결과가 예상돼도 ‘정의’의 관점에서 돌직구처럼 나온 외침이다. 삶의 현장에서 평범한 국민이 택한 유력한 선택지이다.

제주도 예멘 난민 수용을 거부했던 여성과 청년이 그랬던 것처럼 가족과 이웃의 안전을 걱정하는 평범한 국민은 중국인에 대한 한시적 입국 금지를 요구하고 있다.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중국인 근로자를 건설현장에 투입하지 못하는 결정에, 또 중국 가사도우미를 뒤로하고 ‘한국 이모’를 찾아야 하는 워킹맘의 선택에 ‘정당한 거부감’이 개입했다.

정당한 거부감은 정부의 실정을 먹고 자란다. 우한 교민 전세기 수송도, 후베이성 방문 외국인 제한도, 제주도 무비자 입국 보류도 모두 한 발짝씩 늦었다. 천안에서 아산과 진천으로 불현듯 보호시설이 바뀔 때 거부감은 동시에 커졌다. 이 거부감은 지금도 자라고 있다. 중국이 12성에 있는 70곳이 넘는 도시를 봉쇄하고 외출 금지령을 내렸지만, 정작 이들이 우리의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현실에 직면하면 자라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자국민의 인권이 중요한 만큼 보편적 인권 역시 중요하다는 지적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중국인 감염 위험에 주의하고 정당한 거부감으로 대응하는 게 긴요한 만큼 중국인 전체를 위험집단으로 몰아가는 행태 역시 단호한 대응을 요청한다. 유럽 등에서 고개를 드는 아시아인 전체에 대한 혐오 정서는 인권의 가치를 무색하게 한다. ‘묻지마 식’ 입국 금지 조치는 국제적 연대를 약화시키고 감염의 위험을 더 키울 수 있다.

마땅히 비난받아야 할 혐오행위가 위험한 만큼 정당한 두려움을 표현하는 국민을 혐오의 틀 안에 가두는 것도 위험천만하다. 국제적 비상사태를 해결해 나가는 데 필요한 힘은 사회구성원들이 서로를 신뢰할 때 비로소 생겨난다. 서로가 합리적이고 책임감 있는 시민으로 인정하고 배려할 때, 이 전대미문의 감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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