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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아카데미 울린 ‘부재의 기억’

박정태 논설위원


“119 상황실입니다” “살려주세요. 배가 침몰되는 거 같아요” “위치 말해주세요. 위치” “위치를 잘 모르겠어요” “배 이름 뭡니까” “세∼월∼호요. 세월호”….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52분 전남소방본부 119 상황실과 최초 신고자의 통화다. 영화는 망망대해를 배경으로 긴박한 대화를 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상황은 숨가쁘게 전개된다. 8시56분. “현재 계신 위치에서 움직이지 마시고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여학생들이 웅성거린다. “이런 상황에서 막 그러지 않냐. 안전하니까 가만있으라고” “그럼 죽는 거야” “지들끼리 나가고”…. 오전 9시47분. 선장이 배에서 먼저 탈출하는 장면이 잡힌다. 뒤이어 구조보다는 해경에 VIP(대통령) 보고용 영상자료만 재촉하는 청와대 측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세월호 참사를 담은 단편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In the Absence)’이다. 이승준 감독의 29분짜리 이 영화는 다큐에서 흔한 내레이션이 없다. 배경음악도 거의 깔리지 않는다. 단순히 현장 영상과 자막, 통화와 무전 기록 등을 시간 순으로 편집해 참사에서 인양까지 3년의 기간을 재구성한다. 흥분을 유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아픔과 고통, 분노를 담담하게 전한다. 진상 규명에 천착하기보다는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드러내며 국가의 부재를 짚는다. 절제의 미학이 뛰어나다.

참사를 세계에 알려달라는 유족들의 부탁으로 제작된 영화는 2018년 11월 뉴욕 다큐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다. ‘기생충’과 함께 한국 영화 최초로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현지 상영회에서 관객들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공감하며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9일(현지시간) 시상식에서 아깝게 단편 다큐 부문 수상을 놓쳤지만 유족들에겐 ‘후보 지명’만으로도 큰 선물이 됐을 터이다. 단원고 유족 2명이 희생된 학생들의 명찰을 목에 걸고 시상식에 동행해 레드카펫을 밟은 것도 의미가 있다. 4관왕에 오른 ‘기생충’에 온통 시선이 쏠리긴 했지만 ‘부재의 기억’은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을 해냈다. 세계가 오래도록 기억하고 소통할 테니까.

박정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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