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성경 속에 나오는 색깔 ‘흑백’] “빛이 있으라” 하시고 악인들을 잠잠케 하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작 ‘천지 창조’

어둠과 빛, 죽음과 생명, 선과 악, 찬성과 반대, 죄와 순결, 시작과 끝, 검은색과 흰색…. 흑백(黑白)은 동전의 양면처럼 가장 대비되며 상징하는 내용도 극과 극인 색채다.

성경에서 흰색은 신부의 예복(계 19:8), 순수함(계 3:18, 단 12:10), 구원(단 12:3), 빛 (마 17:2), 천사들(요 20:12), 공의(계 19:8), 정의(계 19:11), 하나님의 군대(계 19:14) 등을 상징한다. 검은색은 죽음, 형벌, 기근, 고통(애 4:8), 사망과 공포(계 6:5), 죄(요 3:19∼20), 흑암(유 1:13), 속박(시 107:14), 화해의 중재자(계 6:5) 등을 상징한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새해 국정연설 현장에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모두 흰색 옷을 입고 참석했다. ‘서프레제트 화이트’(suffragette white, 여성 참정권자를 상징하는 흰색)였다. 영미권 여성 정치인들은 중요행사 때 흰옷을 입곤 한다. 20세기 초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이 흰옷을 입은 데서 유래한 전통이다. 반면 2018년에는 미투에 나선 여성들을 지지한다는 의미로 검은색 옷을 맞춰 입었다. 색채는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어둠에서 태어난 빛

흑암은 창조 이전의 상태였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창 1:2~5) 여기서 말하는 어둠은 빛이 창조되기 전, 빛이 전혀 없는 철저한 어둠을 의미한다. 빛이 생기기 전 세상은 질서가 없는 어둠과 혼돈 그 자체였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 가장 먼저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흰색을 뜻하는 영어 화이트(white)는 빛이 있는, 빛나는 것을 뜻하는 고대영어 휘트(hwit)에 어원을 두고 있다. 해가 세상을 밝게 비춰주는 대낮의 색이 흰색이다. 색깔의 심리학에서 흰색은 무죄와 순결을 상징한다. 흰색은 새로운 것을 시작할 의지를 나타낸다. 시작의 색이다. 흰색은 우리 말로 태양의 밝고 환한 빛을 상징한다.

카라바조 작 ‘바울의 회심’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빛으로 상징됐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어둠은 죽음의 세계, 심판 때 악한 자들이 있을 곳으로 묘사된다. “땅은 어두워서 흑암 같고 죽음의 그늘이 져서 아무 구별이 없고 광명도 흑암 같으니이다.”(욥 10:22)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삼상 2:9)

흑암에서 빛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구원의 은총이다.(시 139:12)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회심하는 장면은 너무나 유명하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행 9:3~5) 사울은 흑암에서 빛을 발견했다. 사울은 회심한 후 바울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았다.

흑암이 주는 정서는 불안과 공포다. 악마는 우리 안의 어둠, 즉 인간 마음속에 있는 어두운 심성, 쉽사리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감추어진 심성을 환경을 통해 자극한다.

언약의 흰 돌

사도 요한은 세상의 고난, 유혹, 핍박에서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감춰둔 만나와 흰 돌을 주겠다고 말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 2:17)

흰 돌에 새겨진 새로운 이름은 그리스도께서 선택한 사람들에게 주신 특별한 신분증 같은 것이다. 우리가 뜻밖의 재난과 위기를 당했을 때 주님이 주신 흰 돌을 생각한다면 불안 속에서 평안할 수 있다. 바울이 말했듯이 어떤 역경이 와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롬 8:35~39) 지금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의 공포도 너끈히 이길 수 있다.

흑백은 찬성과 반대의 상징으로도 사용됐다. 고대 유다의 축제에서는 참여할 사람들의 입장권으로 하얀 조약돌을 주었다. 회의 중에 의사표시를 할 때도 썼다. 찬성이면 흰 돌을, 반대면 검은 돌을 보였다고 한다.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는 돌을 투표용으로 썼는데, 흰 돌은 동의를, 검은 돌은 거부를 표시했다.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서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 내가 찬성투표를 하였고.”(행 26:10) 당시 법정에서 흰 돌을 주면 무죄였고 검은 돌을 주면 유죄였다. 이렇게 볼 때, 흰 돌은 예수님의 사죄 속죄 용서를 의미한다.

성경은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성도들이 가는 베실로 짠 흰색 세마포를 입는다고 기록했다.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계 19:8) 흰 세마포는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행실’을 상징한다. 흰옷에는 ‘보혈로 속죄함을 받으라’는 의미도 있다.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계 3:18)

흑백, 검정과 흰색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흑암 속에서 빛으로 세상을 창조해내신 하나님의 힘을 묵상하게 한다.

뉴콘텐츠부장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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