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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탐욕과 관치 사이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예수는 십자가를 지기 전 예루살렘 성전에서 환전상들의 좌판을 뒤엎는다. 유월절이 되면 각지에 흩어졌던 디아스포라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돌아와 희생제사를 드렸는데 이곳에서 파는 흠 없는 양을 제물로 사용하고 성전세도 바쳐야 했다. 로마 화폐는 더럽다는 이유로 성전 화폐만 강제해 상인들은 4~5배의 환전 수수료 폭리를 취하고 있었다. 20세 이상이면 다 내야 했던 성전세는 이틀치 품삯인 2데나리온이나 했다. 대제사장이 환전상과 결탁해 이윤을 공유했기에 가능한 탐욕 행위였다. 예수가 성전 근처 열매 맺지 않은 무화과나무에 저주를 퍼부은 것은 탐욕과 강도의 소굴로 전락한 성전의 행태에 빗댄 것에 다름 아니다. 경제 측면에서 보자면 금융업자(환전상)와 금융 당국(대제사장)의 도덕이 무너지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에 대한 경고일 듯싶다.

서구사회는 오랜 로마 교회 통치 기간 이같이 금융업에 대한 정결주의를 지켜왔다. 근대 금융업을 일으킨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도 초기엔 대금업 대신 어음 할인을 통해 교황청의 대부업에 대한 규제를 피해갈 수밖에 없었다. 20세기 들어서야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 등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확립된 것도 금융업계와 금융 당국이 이윤 추구와 금융 감독이라는 두 축을 놓고 끊임없이 갈등을 겪은 뒤 나온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까지 터진 것은 두 축의 균형 유지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요즘 우리금융과 금융 당국이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 판매 사태와 손태승 회장 겸 우리은행장에 대한 중징계를 놓고 갈등이 한창이다. 이번 사태를 이해하려면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듯하다. 그때부터 쌓인 관치 금융의 결과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당시 대우 현대 등 대기업 부실 자산을 떠안은 우리은행은 회생 불가능한 상태가 됐고,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지분 100%를 보유하게 됐다. 박정희 정권 이래 청와대의 대기업 대출 창구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우리은행은 외환위기를 계기로 아예 대기업 부실 청산의 도구로 전락했다.

공적자금 회수가 급한 정부는 대형화가 세계적 트렌드라며 카드 종금 증권사 등을 모아 우리금융지주를 만들어 매물로 내놨지만 덩치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번번이 민영화에 실패했다. 그러자 덩치를 줄인다며 업계 1위 우리투자증권 등 우량 계열사들을 분리 매각하고 우리은행만 남겨뒀다. 금융산업에 대한 비전 없이 공적자금 극대화에만 목을 맨 정부의 무능이 절정에 달한 순간이었다. 잇따른 민영화 실패 속에 우리금융은 공무원 조직처럼 굳어 갔다. 회장 자리는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출신이나 대통령과 친분 있는 인사가 장악했고, 눈치 빠른 임직원은 정치권에 줄 대기 바빴다.

결국 정부는 18%만 남기고 지분을 몇 덩이로 나눠 파는 식으로 봉합했다. 지난해 터진 DLF 사태는 금융지주 후발주자인 우리금융이 부랴부랴 재도약의 시동을 건 상황에서 터진 사건이었다. 지난 11일 우리은행장에 내정된 권광석 새마을금고 신용공제 대표가 “직원들이 단기 실적을 내려다 체한 꼴”이라고 원인을 진단한 건 우리금융의 흑역사를 축약한 표현이다.

금융가에서 기관보다 회장 개인을 중징계한 데 대해 곱지 않은 여론이 형성되는 것은 관치 망령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억울해할 수도 있지만 하필 총선을 앞둔 시점에 기업은행장 낙하산 인사에 이어 우리금융의 아킬레스건(지배구조)을 건드린 것은 갓끈을 잘못 맸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감독 소홀 비판을 피해가기 위한 사후약방문식 징계보다는 금융 감독과 내부 통제의 원칙을 바로잡아 의혹을 불식해야 할 것이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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