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람실은 결국 문을 닫았다. 관리인은 언제 열릴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개강까지 미뤄졌다고 덧붙였다. 마스크에 가려진 목소리는 불분명했지만 두려운 기색은 또렷했다. 어딜 가나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고개를 돌리고 소매로 가린 채 재채기를 해도 여기저기 경계의 시선이 날아왔다. 연일 확진자의 이동 경로와 의심 환자의 검사 결과에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거리에도 사람들이 부쩍 줄었다. 어느새 우리는 바이러스가 낯설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다양한 입장이 부딪혔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의사, 의심 증상이 있어 격리된 사람과 그들을 관찰해야 하는 사람, 함께 사는 아버지가 위험 지역에 다녀와 걱정인 아들, 위험 지역에 있지만 외부로 나가지 않으면 생계를 이어나갈 수 없는 가장, 태어나자마자 바이러스에 노출된 아이까지. 사회 속에 있는 우리는 바이러스라는 상황 안에서 이 중 하나에 속하게 됐다. 그러다 벗어나거나 하루 만에 사정이 달라지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갈등이 빚어졌다.

이에 따라 최근 바이러스를 다룬 다채로운 이야기가 주목받았다. 어떤 이야기에는 효과적인 주제 전달을 위해 현실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설정과 인물이 들어갔다. 그저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기만 하는 쪽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접한다고 바이러스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귀한 힘이 담겨 있다.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하나의 상황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의 감정에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 현실에서처럼 관찰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내’가 되어 상상해본다. 이야기는 단순히 ‘두렵다’고 말하는 대신 두려움이 나오기까지의 정황을 세세하게 전해주고 여러 각도로 묘사해준다. 그래서 경험하지 못한 일을 미루어 생각하는 상상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상상이 쌓이면 비로소 타인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공감에도 닿을 수 있다. 그래서 이야기에 빠진다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에 스며드는 것이다. ‘만약 나라면 어떨까?’ 하는, 이 단순한 생각은 바이러스가 퍼진 상황을 대하는 태도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우리는 자주 쓰이지 않던 말에도 익숙해졌다. 그중 하나가 ‘모범환자’다. 이번 사태에서 의심할 만한 정황은 있었지만 확실한 증상이 없어 능동감시 대상자로 분류된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발병 가능성을 인지하고 몸 상태를 세밀하게 관찰하며 이동을 최소화했다. 덕분에 피해를 줄일 수 있어 모범환자로 불렸다. 반대로 우왕좌왕하거나 피해를 키울 수 있는 행동으로 아쉬움을 남긴 환자도 있었다. 이 차이 가운데 하나는 상상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감염자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변에 감염자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은 현실에서 비슷한 상황을 만났을 때 보다 유연하고 안정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상상은 합리적인 판단에도 도움을 준다. 견고한 상상은 사실에 바탕을 두기 때문이다. 실체가 불분명한 대상에게 느끼는 불안을 현실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대상에게 느끼는 공포로 바꿔주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아가 불필요한 공포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 우리의 상상을 벗어나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래도 그동안 상상을 통해 공감하는 힘을 길러왔다면 낯선 상황에서도 좀 더 안정적인 방향을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는 8000여종의 바이러스가 있다고 한다. 앞으로 새로운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출현할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매번 같은 처지에 놓이진 않을 것이다. 이야기를 통한 상상이 타인의 공감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면밀히 살펴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이러스가 여전히 위협적인 오늘, 우리가 당장 내일 어떤 처지에 놓일지 아무도 모른다.

전석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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