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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이유 없는 코로나 트라우마가 생길 판이다

고승욱 편집국 부국장


코로나19로 인해 불안하고 어디를 가도 을씨년스럽고 외국인 혐오도 판을 쳐
사태 악화되지 않고 있으니 공포 부추기지 말고 냉정하게 생각하고
차분하게 행동해 엉뚱한 부작용 남기지 말아야


2015년 초여름 유행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은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해 5월 20일 첫 감염자가 확인된 지 열흘 만에 사망자가 나왔고, 마지막 의심환자가 격리해제된 7월 28일까지 36명이 숨졌다. 공식 확진자를 186명으로 계산하면 치사율이 20%에 육박한다. ‘감기처럼 퍼지는데 치료약이 없어 5명 중 1명은 죽는다.’ 말만 놓고 보면 틀리지 않으니 공포 그 자체였다. 그 뒤부터 우리 사회는 바이러스성 감염병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2018년 가을 쿠웨이트에 출장을 다녀와서 메르스에 걸린 60대 환자를 효과적으로 차단한 사례가 있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감염병 트라우마를 없애지는 못했다. 그러다 보니 조류인플루엔자(AI),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같은 가축질병에도 예민해졌다. 사람에게 전염된 희귀한 사례가 흔한 것처럼 느껴진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우리나라에 건너온 지 벌써 3주가 넘었다. 그동안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확진자가 치료를 받은 병원이 폐쇄됐다, 잠시 들른 백화점이 문을 닫았다는 식의 무서운 뉴스를 거의 매일 접했다. 우리와 교류가 많은 중국에서 1000명이 넘게 숨졌다는데 마음이 편할 수 없다. 영화관은 물론이고 식당과 시장까지 어디를 가도 을씨년스럽다. 물리치료를 받는 노인들로 북적이던 동네 병원마저 썰렁하다. 지하철에서 무심코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찌릿찌릿한 눈총을 받고는 마스크를 서둘러 꺼낸 게 여러 번이다.

하지만 이제 코로나19가 얼마나 치명적이었는지 점검할 때가 됐다. 우한에서 전세기로 귀국한 교민들의 격리가 이번 주말부터 해제되기 시작하고, 완치돼 퇴원하는 환자들이 속속 나오는데 언제까지 어깨를 움츠리고 숨어만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도 정해야 한다.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기지개를 켜도 되는지 확인할 필요는 있다.

수치는 이렇다. ‘확진자는 28명. 지금까지 사망자는 없다. 산소마스크 치료를 받은 환자가 있지만 인공호흡기가 동원된 경우는 없어 앞으로도 사망자가 나올 확률은 낮다. 확진자 대부분은 외국에서 감염됐거나 가족끼리 병을 옮긴 경우여서 지역사회 감염이 만연했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다. 의료진 감염사례는 없다.’ 전문가들이 코로나19 사태가 걱정한 만큼 악화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근거다. 검역과 환자의 동선파악 과정에서 허술한 구멍이 발견됐지만 그것이 심각한 사태를 불러오지 않은 것도 다행이다. 2015년 트라우마는 사실을 감추면서 시작됐다. 당시 정부는 국민이 불안해한다며 국제적 기준까지 무시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 결과 대한민국 최고라고 자부하는 병원이 감염의 온상지가 됐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시선은 SNS를 향했다. 온갖 이야기가 스마트폰에 넘치는데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보호해야 할 개인정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의문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5년 후에 코로나19 트라우마는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아닐 가능성도 있다. 일단 진원지인 중국의 상황이 5년 전 우리와 비슷하다. 중국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는지, 유언비어인지 사실인지, 그렇다는 추정과 아니라는 추측이 있을 뿐이다. 하룻밤 만에 240명 넘는 사망자와 1만5000명 가까운 확진자를 공식통계로 내놓는 것을 보면 좀처럼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검역 같은 보건정책 하나하나를 놓고 의견이 갈린다.

제대로 알지 못하니 외국인 혐오가 판을 친다. 애꿎은 재중동포들이 곳곳에서 차별대우를 받는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조심하겠다는데 법으로 막을 수도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정치적 악용이다. 코로나19 사태는 감염병 공포를 선거에 이용했다는 트라우마를 남길지 모른다. ‘친중(親中)’ ‘반중(反中)’으로 갈라진 진영싸움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사람이 죽고, 실제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에 위축된 경제활동은 사태가 진정되면 치유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의심하고 편을 갈라 싸움을 하며 부추긴 공포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엉뚱한 부작용을 남긴다. 그게 트라우마로 남을지 모른다. 더 냉정하게 생각하고 차분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움츠린 어깨를 펴고 기지개를 켤 수 있다.

고승욱 편집국 부국장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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