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강력한 말이 등장할 줄은 몰랐다. 갑론을박이 치열하게 오가다가도 이 말 한마디면 평정된다. 무수한 반박 논리를 등장만으로 단숨에 무너뜨리는 한마디.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

감염병이 돌 때면 어김없이 유행하는 말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국면에서처럼 맹위를 떨친 적도 없는 것 같다. 감염병은 사실 1년 내내 수시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인플루엔자, 수족구병, 일본뇌염, 말라리아, A형 간염, 노로바이러스 등이 해마다 정도와 양상을 조금씩 달리하며 등장과 퇴장을 반복한다. 그러다 몇 년에 한 번씩 낯선 녀석들이 불쑥 튀어나오는데 2009년 신종플루가 그랬고, 2020년 신종 코로나가 그렇다.

이런 감염병의 특이한 점은 ‘신종’이라는 데 있다. 병증에 대한 정보가 불완전하고, 치료에 대한 임상이 충분히 쌓이지 않았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데서 불안과 공포가 파생돼 나온다. 사람들은 감염도 감염이지만 불안에 맞서기 위해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는 논리로 무장한다. 그것이 예방의 기본 수칙으로 자리한다. 그렇다면 조심해서 나쁠 건 정말로 없을까. 단호한 어조와는 별개로 이 원칙은 사실 여러 가지 ‘나쁜 일’을 만들어낸다. 감염병이 돌 때마다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이나 역학조사관처럼 방역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을 공격하는 무기로 쓰여 왔다. 방역의 영웅들은 감염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경원시 되고 일상에서 배척당한다.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는 논리가 그들을 향해 방어벽을 세운다. 노고는 고맙지만 접촉은 사양한다는 입장이 그들의 가족에게까지 뻗어 나간다. 거부와 수군거림이 뒤따른다.

무분별한 조심이 빚는 부작용은 더 있다. 나와 내 가족을 제외한 이들을 잠재적 숙주로 여기며 타인을 의심하고 경계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는 무례한 태도이며 사회적으로는 시민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까지도,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는 말로 정당화된다. 확진자의 동선과 겹치는 곳은 ‘바이러스 노출 지역’으로 낙인찍힌다. 그곳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공공연한 경계의 대상이 되곤 한다. 마냥 조심조심 사는 건 불편한 일이다. 조심하기 위해 외출을 자제하고 모임과 여행처럼 일상의 소소한 활력을 차단하다 보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불만이 쌓이게 마련이다. 내면으로 고이는 나쁜 감정은 분풀이 대상을 찾게 만든다.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는 경구를 무기 삼아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인에 대해서, 유럽에서는 아시아인에 대해서 혐오와 차별의 난타전을 벌이는 것도 일정 부분 그런 맥락에서라고 본다.

지나친 조심은 뜻하지 않게 누군가에게 치명타를 입히기도 한다. 매일같이 하루 장사를 망치고 있는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은 어려움도 쉬이 털어놓지 못한다. ‘돈이 목숨보다 중하냐’는 타박을 들을까 냉가슴을 앓는다. 돈이 목숨을 쥐락펴락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애써 모른 척하면서 말이다.

신종 코로나는 ‘코로나19’라는 이름을 얻고 불확실성을 조금씩 걷어내고 있다. 13일 기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코로나19 확진자는 28명이다. 지난달 20일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하루 1.12명꼴로 발생했고, 그중 7명은 퇴원했다. 손을 자주 씻고, 기침 에티켓을 지키고,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는 것과 같은 일상의 조심이 방역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감염병에 걸리지 않으려는 노력만 놓고 보면 그렇다. 하지만 이 노력이 누군가를 곤경에 빠뜨린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적당함을 찾는 것은 어렵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문수정 산업부 차장 thursday@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