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상영을 알리는 문구가 16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 전광판에 표시돼 있다. ‘기생충’은 아카데미 수상 이후 흥행 역주행을 펼치며 16일 국내 박스오피스 4위에 올랐고, 전 세계 흥행 수익은 2000억원을 돌파했다. 뉴시스

봉준호는 영화 ‘옥자’ 개봉을 앞두고 2017년 4월 한 영화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젠 작은 영화를 더 자주 하고 싶어요. 손에 탁 쥐어지는 단단한 돌멩이 같은 영화를.” 그리고 지난해 5월, 봉준호는 자신의 말처럼 차돌처럼 단단한 복귀작을 들고 칸영화제가 열리는 프랑스 칸으로 날아갔다. 작품명은 ‘기생충’. 영화는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최근 열린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도 한국영화 최초로 작품상 등 4개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현재 대한민국은 ‘봉준호 신드롬’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그를 향한 관심이 높아진 상태다. 온라인에서는 그가 과거 각종 인터뷰에서 했던 말에도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봉준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인터뷰로는 무엇이 있을까.

‘봉준호 인터뷰’ 가운데 두께나 깊이에서 눈여겨봄 직한 인터뷰집으로는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비밀’(예담)을 첫손에 꼽을 만하다. 2009년 출간된 이 책은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영화감독 6명을 인터뷰한 것으로, 봉준호를 인터뷰이로 삼은 부분이 127쪽이나 된다. 내용을 간추리자면 다음과 같다.

봉준호는 판에 박힌 권선징악의 해피엔딩을 좇지 않고 사회보다는 개인을 통해 미래를 낙관해온 감독이다. 그의 영화에서 희망은 언제나 난망한 분위기를 띤다. 왜 그는 미래를 긍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봉준호는 이와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시스템이 개인을 구원할 수 없다는 비관론이 나에게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이름 앞에 언제나 따라붙는 수식어는 ‘봉테일’이다. 작품의 세세한 ‘디테일’까지 챙긴다는 의미에서 생긴 별명이다. 하지만 그는 이 수식어를 마뜩잖게 여긴다. 그는 “언제나 디테일에 몰두하는 것은 아니다. 디테일에 집착할 때는 그게 핵심에 연결되어 있을 때”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끌어들이는 용어는 프랑스 학자 롤랑 바르트가 퍼뜨린 말인 ‘푼크툼(punctum)’. 푼크툼은 작가가 의도하진 않았지만, 예술 작품이 보는 이의 마음을 뒤흔드는 지점을 가리키는 용어다. “저는 연출할 때 인위적으로 그런 푼크툼을 만들려고 해요. 그럴 때만 디테일에 집착하는 거죠. 달력 날짜가 맞는지, 이전 장면에서와 물건의 위치가 동일한지 같은 것은 사실 별로 신경 안 써요.”

책에는 봉준호 영화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슬랩스틱 장면에 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프랑스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는 이를 두고 봉준호의 예술세계를 ‘삑사리(picksary)’의 예술이라고 규정짓기도 했다). 봉준호는 “나는 그냥 슬랩스틱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다큐멘터리적 슬랩스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게 리얼한 묘사라고 보는 것”이라고 했다. 장르 영화의 문법을 자신만의 색깔로 변주하는 실력을 치켜세웠을 때 내놓은 답변 역시 인상적이다. 봉준호는 “내가 혈액형이 AB형”이라며 “이 중 A가 그런 장르적 흥분이라면 B는 대학 때 유럽 예술영화를 찾아다녔던 의지 같은 거다. 그 둘이 내 영화 속에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섞여 있다”고 했다.

‘20세기 소년’으로 유명한 일본 만화가 우라사와 나오키가 봉준호 감독의 오스카 수상을 축하하며 트위터에 올린 그림. 봉 감독은 과거 ‘20세기 소년’ 연출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트위터 캡처

이 밖에도 ‘자연인 봉준호’의 삶이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곳곳에 등장한다. 그는 좁고 밀폐된 공간을 좋아해서 어린 시절엔 옷장 속에서 문을 닫고 네댓 시간씩 혼자 있곤 했다. 오스카 수상 이후 그의 외조부가 월북 작가 박태원이라는 사실이 관심을 끌었는데, 정작 그는 예술가적 기질은 부계(父系) 쪽에서 물려받았을 거라고 자평했다(2017년 작고한 그의 아버지 봉상균씨는 한국의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봉준호는 “감독이 못 해서는 안 되는 게 있다면 어떤 것인가” 묻자 이렇게 답했다.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결국 그것 하나로 버티는 거라고 생각해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은 결국 내가 찍고 싶은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에요.”

이 같은 답변은 다른 인터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음악평론가 김나희가 예술가들을 인터뷰해 2017년 4월 내놓은 ‘예술이라는 은하에서’가 그런 경우다. 봉준호는 “한때 미대를 갈까 하는 생각도 진지하게 했다”며 “나에게 중요한 것은 이미지이고, 형태와 색채는 이미지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봉준호는 지난 20년간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연출작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장편만 따진다면 ‘기생충’까지 총 7편을 만들었으니, 약 3년마다 연출작을 내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설국열차’ 개봉을 앞둔 2013년 8월 한 영화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만드는 속도가 느려서 평생 15편 정도” 찍을 수 있을 듯하다는 식으로 말했다.

하지만 작업 속도를 끌어올리고 싶다는 말도 자주 했었다. ‘예술이라는 은하에서’에 실린 인터뷰 중간에는 이런 발언이 나온다. “영화를 더 많이 만들고 싶다. 내 인생에는 영화를 보는 것과 만드는 것밖에 없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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