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집 폐업, 노모 치료비 생계 짓눌려
닥치는 대로 일하다 과로로 쓰러져
힘들어도 다른 선택지 없어


“돈이 필요한 거지. 가장이니까 두려운 거예요.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생활이 될 거라는 장담이 없잖아요. 이 정도 나이가 되면 (새로운 일을 해서) 말아먹는 게 두렵고, 불투명한 미래가 두렵고…. 여기서 더 자빠지면 가족들은 어떡해. 서글퍼지지.”(플랫폼 노동자 정준수씨·가명·50)

정길씨가 쉬지 못한 이유

이정길(가명·49)씨는 중국집을 운영했다. 그러나 내수가 얼어붙으면서 최근 수년간 벌이는 점점 줄었다. 자영업 침체의 그늘이 그에게도 드리워졌다. 설상가상 노모의 건강이 악화돼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시켰다. 그 역시 아내와 이혼했는데, 눈에 띄게 줄어드는 식당 매출로는 자녀 양육비와 모친 치료비·간병비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배달이 돈이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플랫폼 노동에 올라탔다. 그곳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꿀콜’(동선이 쉬운 배달) ‘똥콜’(거리가 먼 배달) 가리지 않고 미친 듯이 일감을 따내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사달이 났다. 얼마 전 출근 준비를 하다 쓰러졌다. 머리가 핑 돌았다. ‘어’ 외마디를 외치고 바닥에 누워 혼자 119에 신고했다. 다행히 바닥에 머리를 부딪치지 않아 전화기를 들 수 있었다. 뇌출혈 진단을 받았고, 후유증으로 반신마비가 왔다.

“몇 달 동안 하루도 안 쉬었대요.” 그를 알고 있는 동료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한심하다는 것인지 짠하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씨는 하루 반나절 넘게 오토바이를 탔다고 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도로 위를 달렸다.

이씨는 ‘플랫폼’ 특성대로 원하는 만큼 일을 할 수 있었고, 콜을 잡는 만큼 돈을 벌 수 있었다. 진입장벽이 없는 배달일은 쉰을 바라보는 경력 단절 노동자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었다. 이들에겐 줄일 수 없는 비용이 명확했고, 이를 충당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이씨는 주말이나 자는 시간을 모두 ‘콜’에 쏟아부었다. 장시간 노동에 스스로를 갈아 넣은 만큼 매주 콜비가 주급 단위로 입금됐다. 수행한 콜이 쌓일수록 어머니의 병원비 걱정은 사라져 갔다. 하지만 쓰러진 이씨는 지금 다시 배달 일을 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동료들은 이씨를 보며 “무리해서 일을 하면 형처럼 된다”고 혀를 찼지만, 그에게 별 다른 수가 없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생계 위해 대안이 없다

최규배(가명·49)씨는 봉제 일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가 했던 일을 컴퓨터가 대체했다. 기술이 녹슨 것도, 사업장 일감이 줄어든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같은 일을 하던 동료들과 설 자리를 잃었다.

마흔 초반, 새롭게 인테리어 일을 배웠다. 일감이 있으면 지방도 마다하지 않고 곳곳을 누볐다. 하지만 매일 지방을 오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때 ‘월수입 400만원 이상을 올릴 수 있다’는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배달 일은 교통사고를 겪어 본 사람들에겐 쉽지 않다. 최씨 역시 인테리어 일을 하다 큰 교통사고를 겪은 터였다. 어머니가 막아섰다. “애도 키우고 생활을 해야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고 설득했죠.”

그가 벌어들여야 할 돈의 최소치는 명확했다. 보증금 2600만원짜리 임대아파트 관리비 13만원, 중학생 딸의 학원비 30만원, 대출 이자 15만원이 고정비다. 노모와 함께 사는 세 식구 생활비는 160만원이다. 남는 돈은 2년마다 오르는 임대아파트 보증금 인상을 대비해 모아두는 정도다.

가족과 지내는 시간은 거의 없다. 그는 “입사 면접 볼 때 ‘아이가 어려서 주말은 하루라도 쉬는 날로 정해서 돌보고 싶다’고 했더니 안 된다고 하더라. 주말은 무조건 껴야 한다”며 “어쩌다 한 번 한 달에 1~2번 정도 정 필요할 때 이야기하면 하루 정도는 바꿔줄 수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최씨에게 시간이 없다는 걸 딸도 아는 듯했다. 최씨는 “딸이 방학 때나 (휴일) 이럴 때도 제가 바쁜 걸 아는지 어디 가자는 이야기를 잘 안 한다”고 했다.

바쁘게 주문을 처리하다 보면 사람들이 주로 많이 시키는 가게, 음식 평이 좋은 가게는 감으로 알 수 있다. 그 얘기를 꺼내면서 “시간 되면 같이 한 번 와야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뜻대로 안 되더라. 외식은 언제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래됐다”고 말했다.

최씨는 지난 9일 평소처럼 일을 하다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넘어지는 ‘슬립’ 사고를 당했다. 몸은 괜찮은지 묻자 “며칠 정도만 쉬면 된다”고 했다. 라이더에게 슬립 사고는 흔한 일이다.

전업 생각은 없다. “앞으로 10년 정도는 이 일을 더 하고 싶어요. 제 나이에 가족들 먹여살릴 돈을 버는 다른 일을 찾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 일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매일 출근해요. 저처럼 40대 후반 넘어가는 분들은 ‘이제 와서 여기 그만두고 가봤자 뭘 할 수 있겠냐’는 말을 많이 해요.”

가족 생계비를 벌기 위해 플랫폼 노동으로 흘러들어왔다는 이야기는 많았다. 황정민(가명·25)씨는 “형들 대부분은 사업 실패해서 매달 이자를 내거나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돈이 많은 것 같더라”라며 “요즘 부쩍 콜비가 떨어지면서 서로 돈 빌려 달라는 얘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김병주(가명·51)씨는 “나름대로 힘들게 살다가 더 힘들어져서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며 “쉬운 일도 아니고, 솔직한 말로 대우받는 직업도 아니다. 경제적인 부분에서 위험하고 불안정하고, 그래도 꾸준히 하다보면 수입이 나오니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슈&탐사팀=전웅빈 김유나 정현수 김판 임주언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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