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배달대행업체 ‘배달의 민족’의 한 라이더가 지난 12일 서울시내 한 오피스텔에 음식을 배달한 뒤 휴대폰을 보면서 엘리베이터로 향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버티던 정규직도 사장님도 라이더가 됐다
전문가 “앞으로 대부분 시민 플랫폼 노동자로 전락할 것”


‘99.997%에 달하는 대다수 일반 시민들은 플랫폼에 종속돼 임시계약직이나 프리랜서 형태의 단순노동자 신세로 전락할 것이다.’

유기윤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팀은 2017년 10월 ‘미래의 도시에서 시민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주제 연구 보고서에서 이같이 전망했다. 연구진은 단순 노동자를 프레카리아트(Precariat)로 표현했다.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하다’(Precario)는 이탈리아어와 노동자를 뜻하는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 합성어다. 말 그대로 ‘불안정성’이 큰 비숙련 노동자를 뜻한다. 그런데 최근 한국사회에서 스스로를 프레카리아트로 내몬 계층들이 늘고 있다.

노동법의 보호를 스스로 팽개치고 일감 노동에 뛰어든 사연은 무엇일까. 그들은 다니던 직장, 운영하던 가게에서 ‘생활의 만족’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기성 일자리 노동이 플랫폼 노동만큼 열악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플랫폼 노동을 선택한 것인지 내몰린 것인지 모호했다.

일자리 붕괴

오민복(가명·29)씨는 4년 전까지 대기업 보안요원이었다. 정확히는 대기업 아래 하청업체에 고용된 상태였지만 그래도 4대 보험과 퇴직금이 보장된 ‘정규직’이었다. 오씨는 이곳에서 주간 근무 때는 11시간, 야간 근무 때는 13시간을 일했다. 3개 조가 돌아가며 근무하는 형태였는데, 주말 휴무 중 하루는 무조건 반납하는 게 불문율이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달에는 472시간을 일했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버는 돈이 월 260만원, 세금 등을 떼면 240만원이었습니다.”

그 전 직장은 더 마음에 차지 않았다. 생활체육학과 전공인 오씨의 첫 직업은 유아 체육교사였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체육시간을 함께 보내고 매달 150만원을 받았다. 밥값과 기름값은 그가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돈도 조금 주는데, 일은 너무 힘드니까….” 결국 6개월 만에 그만뒀다.

이곳저곳을 돌다 오씨는 정착지로 플랫폼 노동을 선택했다. 그는 ‘애초에는 오토바이를 타던 친구 둘이 죽어 절대 근처도 안 가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했다. 그 역시 플랫폼 노동이 불확실한 일자리라는 걸 알고 있다. 최근 픽업 오류 문제로 배달의민족 관제센터와 갈등을 겪다가 대번에 ‘잘리는’ 경험도 했다. 그렇지만 다른 직업을 찾지 않고 지역의 일반 배달대행업체로 옮겼다. 이유는 단순했다. “부모님이 오토바이 타는 걸 알면 큰일 난다”면서도 “보안요원으로 일했던 시간만큼 라이더로 일하면 2~3배는 더 버니까”라고 말했다.

민홍기(가명·35)씨는 플랫폼이 생기기 훨씬 전인 20대 초반부터 배달일을 해왔다. 당시는 중국집 소속 배달부였다. 라이더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학을 떼고 그만둔 이후 2년 동안 고급 아파트에서 경비로 일했다. 하지만 경비 일도 쉽지 않았다. 매주 2~3일 야간 근무를 하다 보니 스스로가 좀비가 된 것 같았다고 했다. 그 역시 박봉이었다. 버스회사에 취직할까 싶어 대형 면허도 땄다. 하지만 버스 운전 경험이 없는 ‘초짜’에게 일자리를 주는 버스회사가 없었다. 돈 100만원 정도 투자하면 버스 운전을 가르쳐주는 학원이 있다는 이야길 들었지만 운전을 배운다고 취업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민씨는 결국 다시 배달 플랫폼 라이더가 됐다.

청년들이 플랫폼 노동에 빨려들어 간 건 기존 노동시장의 붕괴를 반증한다. ‘중소기업에 다니거나 자영업을 하면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지만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많지 않다’ ‘오래 일해도 돈은 벌리지 않는다’ ‘전공을 살린 일자리에서도 미래가 없다’ ‘상대적 박탈감만 커져간다’ 등의 토로가 젊은 플랫폼 노동자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다. 심지어는 그런 일자리 숫자마저 줄고 있다. 10여년 동안 배달대행 라이더를 거쳐 지금은 퀵 서비스 기사로 일하고 있는 조운정(가명·33)씨는 “요즘은 ‘사오정(45세가 정년)’도 아니고, 마흔이면 회사에서 잘리는 시대잖아요”라며 “굳이 다른 일을 스트레스받으면서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라고 했다.

반면 배달대행에서 수확하는 열매는 이들에게 즉각적이고 달콤했다. 기존의 정규직 일자리처럼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도, 쉬는 시간을 보장해 주지도 않지만 ‘건수’만 올리면 주머니가 채워졌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일감 노동’에 몸을 던져 당장 돈을 손에 쥐는 일만이 확실한 일이라는 모순이다.

“만약에 확실히 월 300만~400만원을 벌 수 있다고 하면 그런 일을 선택하겠죠. 그런데 요즘은 월 200만원 받는 업체가 불안하기까지 하니 그런 일을 해야 하나 싶은 거예요.”

일자리에 대한 이런 인식변화는 첫 일자리를 준비하는 대학생에게서도 나타났다. 수도권 법대 2학년인 임현우(가명·26)씨는 공인중개사 시험을 공부하는 취준생이다. 그는 틈날 때마다 쿠리어(쿠팡이츠 라이더)로 일을 하고 있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던 지난 5일 임씨는 쿠팡이츠 푸시 알림이 뜨자 책을 덮고 오토바이를 탔다. 서울 기온이 영하 11도까지 내려간 날, 쿠팡이츠는 ‘오후 4시부터 건당 금액 최대 1만8000원!’ 공지를 보냈다. “전날 눈이 왔는데 날씨가 그렇게 추우면 사실 제일 위험하죠. 그래서인지 단가를 엄청 올려서 주더라고요. 일단은 무조건 돈이 되면 좋죠.” 임씨는 독서실을 나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장흥배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상임연구원은 “기존 노동시장 자체가 불안정해지고 소득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실업자나 단시간 고용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17일 진단했다. 플랫폼 경제가 굴러가는 건 실업자나 추가적 소득이 필요한 저임금 노동자가 발생해 시스템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저임금 일감 노동이 필요한 노동자가 많아야 플랫폼이 돌아가는 구조다.

“기존 일자리만으론 버티기 버거웠다”

고종필(가명·40)씨는 물류센터 하청 근무를 하다 그만두고 스스로 플랫폼에 올라탔다. 그는 물류센터 일을 할 땐 새벽 6시에 집에서 나와야 했다. 야근도 잦아 늦은 밤 집에 가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일한 노동의 대가는 월 300만원 정도였다. 세 식구가 근근이 버틸 만한 금액이었다.

요양비가 버거웠다. 장인은 4년을 요양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하다 결혼 전 돌아가셨다. 아내는 대출을 받아 병원비를 짊어졌는데 빚이 불어나 결국 개인회생에 들어갔다. 고씨의 부친도 아팠다. 전세를 빼고 월세로 줄였는데도 외벌이 생활의 한계점은 분명했다.

“호의호식을 하는 것도 아니고, 외식하거나 놀러가거나 하는 걸 다 배제하고 봐도 한 달 300만원 벌면 제로(0)가 되는 상황이었어요. 당장 눈앞에는 오늘내일 막아야 할 게 너무 많은데, 평범한 곳을 다녀서는 도무지 돈에 쫓기듯 하는 일상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둘째가 태어나 벌어야 할 돈이 늘었다. 첫째를 유치원에 데려다줄 사람도 없었다. 고민 끝에 직장을 그만두고 생전 처음 오토바이 배달대행을 시작했다. 그는 “오토바이를 출고한 날 처음 타봤는데, 심지어 시동 걸 줄도 몰라서 매장 사장님이 웃더라”고 했다.

초보 라이더에게 배달은 위험의 연속이었다. 성남에서 6개월 일하는 동안 동료 3명이 죽었다고 했다.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사고가 나는 걸 보고 나니 시간에 쫓기듯 질주하기가 겁이 났다. 하지만 그는 “신호를 지키면서 천천히 안전하게 타다보니 시간당 처리할 수 있는 콜이 3~4개밖에 안 됐다”며 “콜이 뜸한 시간도 있어서 그런 식으로 일해서는 하루 12시간 일해도 15만원 벌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목숨 건 질주를 계속해야 할지 선택해야 했다. 그렇다고 기존의 저임금 일자리로 돌아갈 순 없었다. 그래서 그는 본업을 시간에 쫓길 부담이 덜한 퀵서비스로 옮겼다. 또 다른 플랫폼 노동이다. 대신 부족한 돈은 야간 파트타임 배달대행으로 메우기로 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퀵서비스 일을 끝내면 자정까지 배달을 하는 식이다.

목표치가 있냐고 했더니 “체력 닿는 한도까지”라고 한다. 그러면서 “쉬는 날 누워있다가도 ‘앱을 켜 (배달) 한 건이라도 하면 그게 돈이고, 애들 과자라도 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쉬려고 작정하고 누웠다가도 어느 순간 옷을 입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이 되고 난 다음부터는 내 꿈, 내 취미, 이런 건 없어지더라고요. 이런 상황에 불만이 생기지도 않고, 서글프지도 않습니다.”

배달원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 관계자들이 17일 서울 송파구 배달 앱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배달료 보장, 지역 차별 개선 등을 촉구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위기의 영세 상인까지 흡수하는 플랫폼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플랫폼경제 종사기간 조사에서 음식배달 노동자는 1년 이하가 21.4%, 1년 이상~3년 미만이 55.1%에 달했다. 여러 사정으로 일자리를 구하다 처음 오토바이에 올라탄 신입 플랫폼 노동자가 상당수란 의미다.

플랫폼은 위태로운 영세 사장들도 빨아들이고 있다. 대학에서 미용을 전공한 강수현(가명·33)씨는 친구와 붙임머리 미용실을 동업했다. 가게 사정은 나빠지고 친구는 집안 사정이 생겨 혼자 가게를 떠맡았다. 다른 지출을 줄여도 가게 월세와 전기요금, 재료값으로 나가는 150만원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장사를 시작하면서 생긴 채무는 몸집을 키워 억대가 됐다. 이혼한 부모님은 두 분 다 몸이 좋지 않아 병원 신세를 질 정도여서 일은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장녀인 강씨는 가장이 돼야 했다.

손님이 없을 때 벌충이라도 하려고 시작한 게 배달이었다. 어머니께 매달 드리던 생활비 150만원을 도저히 보내기 어려워졌을 즈음이었다. 그런데 오토바이를 타며 계절이 세 번 바뀔 동안 부업과 주업이 뒤바뀌었다. 강씨는 오전 10시쯤 출근해 오후 5시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집에서 저녁을 먹은 뒤 다시 오토바이를 탄다. 미용실은 드물게 손님 예약이 잡혀있는 날만 연다. 미용실 매출은 개업 때의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상황 때문에 떠밀려서 플랫폼 일을 하게 됐다”는 강씨는 이제 플랫폼 노동이 아니면 삶을 지탱할 수가 없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지만 빨리 돈을 벌어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 그는 “달리 투잡을 할 수 있었거나 가게가 잘됐다면 그 일만 열심히 했겠죠”라며 “이제는 배달을 같이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라이더 최모(41)씨는 “저도 솔직히 배달대행을 쓰며 장사를 했던 사람”이라며 “어중간히 장사하다 폐업하면 대행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배달 다니다보면 요새 망할 것 같은 집들이 많이 보인다. ‘저들도 곧 다 나처럼 오토바이 타겠구나’ 싶다”고 했다.

유기윤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일자리 플랫폼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프레카리아트라는 플랫폼에 종속된 노동 계급에 계속 편입되고 있다”며 “앞으로 거의 모든 영역에서 플랫폼화가 가속화될 것이고 대부분 사람들은 플랫폼 노동자로 전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나 정현수 김판 임주언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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