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의 빛을 따라] 뜻밖의 손님


눈송이가 하염없이 쏟아져 내리던 주일 오후, 밖에 있는 내게 아내가 두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아무런 메시지도 없었지만,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 장은 부등깃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의 분홍빛 생명체였다. 다른 한 장은 눈을 또랑또랑 뜬 채 카메라를 응시하는 비둘기 한 마리였다.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내 서재에 연해 있는 베란다 창밖에 놓인 실외기 틈에 외로운 생명 하나가 깃들었던 것이다. 저물녘 집으로 돌아가 창문을 열어보니 어미 비둘기는 갑자기 닥쳐온 추위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고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낯선 사람의 등장에 경계는 하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단호한 눈빛을 내게 보냈다.

비둘기 배설물이 켜켜이 쌓여 있어 습도가 높은 날에는 그 냄새가 문틈으로 스며들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날이 푸근해지면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여린 생명이 내 창가에서 탄생한 것이다. 차마 그 가족을 내쫓을 수는 없고, 새끼가 날 수 있을 때까지 불편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작고 여린 것들을 대할 때 우리 마음은 말랑말랑해진다. 여린 생명은 종이 무엇이든 우리의 굳은 표정을 녹여 벙싯 웃게 만들지 않던가. ‘작은 것들의 신’으로 알려진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신작 소설 ‘지복의 성자’에 등장하는 안줌은 남녀 성을 동시에 가진 존재다. 그런 이들을 가리키는 말 ‘히즈라’는 신성한 영혼이 깃든 육체라는 뜻을 내포하지만, 일종의 멸칭이라 할 수 있다. 히즈라들의 내면에 깃든 어둠이 깊다. 어느 날 안줌은 계단에 버려진 세 살배기 아이 자이나브를 데려가 키우기 시작한다. 안줌은 한 인간이 타인을 완전하게 사랑하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당혹스럽게 자각한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현실이었다. 자이나브와의 만남은 안줌의 삶에 카타르시스적 전환점이 됐다. 자이나브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그는 자기 속에 깃든 어둠과 화해해야 했고, 단순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거듭나야 했다.

누군가의 품이 되어주려 할 때 사람은 사람다워진다. 거룩해진다. 김준태 시인은 ‘인간은 거룩하다’라는 시에서 새벽에 일어나면 한 그릇의 물도 엎지르지 말고, 한 삽의 흙도 불구덩이에 던지지 말자고 말한다. 차라리 달팽이라도 어루만지고, 풀잎을 가슴에 담고 설레어 보라는 것이다. 시인은 ‘풀여치 지렁이 장구벌레 물새 뜸북새 물방울’을 호명하며 말한다. “땅 위에 살아 있는 것들은 얼마나 거룩하냐.” 인간은 땅 위의 칼들을 녹슬게 할 때 거룩하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와 만난 사람들이 모두 변화를 경험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스스로 더럽혀지지 않는 흙과 같은 존재를 만났기 때문이다. 거룩함이란 구별됨을 뜻하지만, 스스로 거룩함을 자처하는 이들은 정작 거룩함을 알지 못한다. 거룩함이란 잣대를 갖고 다른 이들을 재고 가르는 이들은 예수의 마음에서 가장 멀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사회의 긴장도가 높아졌다. 노골적이든 은밀하게든 특정한 나라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이 깊어진 것 같다. 최근 외국을 다녀온 이들은 아시아인들이라 하여 기피 대상이 됐던 불쾌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속상해 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이들만 있는 게 아니다. 감염의 위험을 알면서도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이들이 있다. 의료진들, 방역을 담당하는 분들, 지원 업무를 하는 분들은 누군가의 품이 되기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연약한 것들을 부둥켜안으려는 이들이 늘어날 때 증오와 혐오의 바이러스는 스러진다. 그들이야말로 봄을 선구하는 이들이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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