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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달리면 뉴욕인 듯… 경복궁 뛰면 역사 속에 들어간 듯”

[인터뷰] ‘서울을 달리는 100가지 방법’ 출간한 안정은씨

‘러닝 전도사’ 안정은씨가 지난 17일 오전 서울 강남역 부근 한 카페에서 달리기 도시로서 서울이 얼마나 매력적인 곳인지 얘기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서울이라는 도시와 달리기. 아직까지는 낯선 조합이다. 서울에서 야외 운동이라면 등산이나 자전거 정도가 익숙하다. 도시 생활이나 도시 관광을 말할 때도 보행이나 자전거는 종종 거론돼 왔지만 달리기는 논외의 주제였다.

최근 출간된 ‘서울을 달리는 100가지 방법’이란 책은 서울을 ‘달리기 도시’라는 측면에서 조명하는 야심찬 시도다. 서울 25개 구를 망라해 총 100가지 러닝 코스를 소개한다. 시청역-경복궁 코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종로 코스, 홍대입구역-경의선숲길 코스, 역삼역-강남 코스, 마곡나루역-서울식물원 코스 등 서울 어디서나 달리기를 즐길 수 있다고 안내한다.

사진가 최진성씨와 함께 이 책을 쓴 안정은(27)씨를 지난 17일 서울 강남역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러닝복을 입고 나타난 안씨는 ‘러닝 전도사’라고 적힌 명함을 내밀었다.

“서울이 달리기 좋은 도시라니,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포인트”라고 책 얘기를 꺼냈더니 안씨는 “달리기를 하면서 서울을 더 사랑하게 됐다”며 “베를린, 도쿄, 뉴욕, 샌프란시스코, 몽골, 아프리카 모리셔스 등 해외에서도 여러 곳을 달렸지만 서울만큼 아름다운 곳은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외국인 친구들 얘기를 들려줬다.

“외국인 러너들은 서울을 굉장히 부러워한다. 한강이 있고,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도 가능하다. 동남아시아 친구들은 눈을 맞으며 달릴 수 있다는 것을 엄청 부러워한다. 유럽 친구들은 한강을 그렇게 좋아한다. 특히 한강에서 달리기를 하고 난 뒤 편의점에서 맥주와 함께 치킨이나 라면을 먹는 걸 굉장히 좋아하더라.”

그동안 서울의 달리는 사람들은 주로 한강이나 남산, 여의도공원, 서울숲 등에서 달렸다. 서울에서 가장 달리기 좋은 곳을 묻자 안씨는 “역시 한강”이라며 “어디서나 닿을 수 있고 안전하다. 길게 뻗어 있어서 한 번도 쉬지 않고 멀리 달릴 수 있는 데다 야경도 멋지다. 중간에 화장실이나 급수대도 잘 갖춰져 있고”라고 설명했다.

안정은씨가 서울 광화문을 달리는 모습. 안정은씨 제공

남산 내부순환로도 그가 강추하는 코스다. “나무가 우거져서 여름에는 햇빛을 막아주고 겨울에는 추위를 막아준다. 봄에는 활짝 핀 벚꽃을 보며 달리는 기분이 황홀하다. 업다운이 있어서 러닝 훈련을 하기에도 좋다.”

안씨는 “서울은 달리기에 너무 좋은 곳이지만 외국의 도시들에 비하면 달리는 문화가 아직 약한 편”이라면서 “도심에서도 달릴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도시를 달리는 ‘시티런’의 매력을 길게 소개했다.

“밤에 불빛으로 가득한 압구정동을 달리다 보면 마치 뉴욕에 와 있는 것 같다. 광화문광장에서 경복궁 쪽으로 달리면 한국의 역사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느낌도 든다. 새벽에 번화가를 달려보면 낯선 모습이 보인다. 달리면 도시의 새로운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출퇴근하면서 오가는 거리와 달리면서 보는 거리가 다르다. 달려보면 서울이 이렇게 예쁘구나 절로 느끼게 된다. 도시를 더 알게 되고 더 사랑하게 된다.”

도심을 달리다 보면 횡단보도나 보행자들이 장애가 되지 않을까? 사람들의 시선은?

“횡단보도에서는 걸어서 천천히 이동하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멈췄다가 달리면 된다. 혼자 달리는 게 어색하면 여럿이 달리면 되고.”

안씨는 서울에서 달리기를 즐겨온 러너 100명을 만나 그들이 추천하는 러닝 코스를 책에 담았다. 안씨에 따르면 함께 모여서 도시를 달리는 ‘러닝크루’가 서울에서만 수십 개 운영되고 있다. 대부분 젊은이들이다.

안정은씨가 한강대교를 달리는 모습. 안정은씨 제공

안씨는 “국내에서 가장 큰 러닝 대회가 3월에 열리는 서울국제마라톤인데, 2018년까지만 해도 50대 이상의 참가자가 많았다. 그런데 2019년에는 20, 30대 참가자가 47%나 됐다. 10대까지 더하면 젊은 러너들 비율이 50%를 넘어간다”며 “젊은 러닝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아저씨들의 운동으로 여겨졌던 달리기에 20, 30대가 빠져드는 이유에 대한 안씨의 분석도 흥미롭다.

“일단은 칭찬의 힘. 젊은이들이 사회생활에서 칭찬을 받거나 만족감을 느끼기 힘든데 러닝은 하고 나면 해냈다는 성취감이 든다. 동료들이 칭찬해주고 메달도 준다. 나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러닝은 젊은이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러닝화나 러닝복은 굉장히 화려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입을 수 없는 복장이다. 그런 복장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SNS에 포스팅한다.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 중에 ‘멀티 페르소나’라는 말이 있는데, 러너는 젊은이들에게 또 하나의 페르소나가 된다. 퇴근하면 러너가 된다. 직장인 말고 또 하나의 삶을 살 수 있다.”

안씨는 절망에 빠져 바깥에도 나가지 못했던 자신을 구해준 달리기의 치유력과 러닝 붐에 주목해 다니던 대기업을 나와 러닝 전도사라는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달리기 책 작가이자 달리기 강사로, 스포츠 브랜드 모델로, 러닝 행사를 기획하는 회사 런더풀의 대표로 바쁘게 살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러닝 문화는 좀 늦었지만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면서 “외국의 도시들처럼 서울에서도 시티런이 익숙한 문화로 자리잡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씨는 다음 책으로 제주도 달리기 책을 준비하고 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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