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적 행위인데도 재판 개입
처벌 불가라니… ‘가족 잣대’
셀프 재판해 면죄부 준 셈
공수처가 수사해도 법관들은
무죄 방망이 있어 걱정 없을 듯
이젠 탄핵밖에 없으니 국회가
하루빨리 소추 나서야


삼한시대 때 천신(天神)에 대한 제사를 지내던 특별한 성지(聖地)가 소도(蘇塗)다. 죄인이 이곳으로 달아나면 잡아가지 못했다. 국법의 힘이 절대 미칠 수 없는 성역인 것이다. ‘무죄’, ‘또 무죄’, ‘재판에 개입해도 무죄’…. 사법 농단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판사 14명 중 4명에 대해 줄줄이 무죄를 선고한 법원을 현대판 소도로 불러도 무방하겠다. 판사 처벌 불가 지역이기 때문이다. 3차례의 1심 선고 가운데 헌법을 위반한 ‘중대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형법상으론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를 천하만방에 알린 게 클라이맥스였다.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난 사법 농단 사태의 본류는 재판 개입이었다. 사법부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상고법원 도입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박근혜 정권과 결탁해 각종 재판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사례 중 하나가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부장판사 사건이다. 그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재직 때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을 제기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았다. 청와대 입장을 전달받은 그는 당시 재판장에게 의혹이 허위라는 중간 판단을 밝혀달라, 법리적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되 피고인을 질책해달라는 등의 요구를 했다. 이는 그대로 실현됐다. 판결 내용도 수정됐다. 근데 지난 14일 1심 법원은 공소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유가 해괴하다. 법관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는 맞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형사수석부장에게는 법관의 재판 업무에 관한 직무감독권이 없기 때문에 직권남용의 죄를 물을 수 없다고 했다. 직권이 없으니 남용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형식논리라면 법원 고위 간부들이 후배 법관 재판에 관여해도 법적으론 처벌할 수 없다는 얘기다. 보편적 상식을 가진 국민 입장에선 궤변으로 여겨진다. 이현령비현령 식 셀프 재판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불멸의 신성가족을 살리고자 다른 잣대의 법리를 개발한 셈이다. 양 전 대법원장 등 당시 수뇌부의 재판 개입도 무죄가 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게다가 최근 대법원이 직권남용 적용 기준을 엄격히 제시한 판례까지 확립해 빠져나갈 구멍도 만들어놓았으니 면죄부 법리 구성은 한층 쉬워졌다.

법관 비리 사건으로 비화된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해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의 판사 3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판사들을 겨냥한 검찰의 수사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영장전담 판사만이 봐야 할 수사기록 등 기밀을 상부에 유출한 게 직무상 정당한 행위란다. 사법부의 신뢰 확보 방안을 마련하는 데 사용됐다며 합리화한다. 청와대나 행정부가 소속 직원에 대한 영장이 청구됐을 때 재발 방지 차원에서 수사기록을 요청하면 법원은 마땅히 건네줘야 한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법원행정처가 내려보낸 ‘법관 가족관계 문건’도 영장재판 가이드라인이 아니라고 우긴다. 연루 법관 7명과 배우자, 자녀, 부모 등 31명의 명단과 생년월일이 담긴 자료를 받은 판사가 이들에 대한 계좌추적영장 등을 무더기 기각했는데도 말이다.

판사들은 오는 7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출범해도 염려할 게 없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법원행정처장이 수사대상인 직권남용, 직무유기, 공무상 비밀누설 등을 거론하며 “재판에 관한 고소·고발이 공수처에 밀려오면 결과적으로 법관을 위축시키고 재판 독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는데 알고 보니 엄살이었다. 공수처가 판사들을 수사해 기소하더라도 ‘가족 잣대’로 마법의 무죄 방망이를 두드리면 되는데 뭔 걱정인가. 초월적인 사법권력의 위대함을 뼈저리게 느낄 공수처가 두 손 들 게다.

사법부가 동료 판사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변신한 모양이다. 재판 독립성·공정성이 훼손돼도, 존립 기반이 흔들려도, 사법 불신이 초래돼도 피고인 신분의 판사만은 꼭 구하겠다고 법원이 똘똘 뭉친 형국이다. 조직 이기주의에 매몰된 사법부의 민낯이 드러났다. 사법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기이한 판결에서 한 가지 소득이 있었다면 법원이 재판 개입 행위의 위헌성을 자인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헌법 유린 판사들에 대한 탄핵밖에 없다. 국회가 하루빨리 탄핵소추에 나서야 한다.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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