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입이다. 거의 모든 대통령 참석 행사에 동행하며, 대외에 발신하는 메시지를 청와대 각 부서와 조율한다. 극소수의 인원만 참석하는 대통령 티타임 멤버로서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듣고 정제해 언론과 대중에게 전달한다. 대변인이 전하는 말이 곧 대통령의 의중이다. 한 글자라도 메시지가 잘못 나가면 오해를 낳고 사고가 난다. 그러니 “청와대 부속실장, 연설기획비서관보다 대변인이 제일 힘들었다(윤태영 전 대변인)”는 말까지 나온다.

대통령의 입들이 이제 국민의 입을 자처하며 선거판에 뛰어들고 있다. 4·15 총선을 앞두고 역대 정권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인사들의 출마 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박수현·고민정 전 대변인은 출마를 확정지었고, 김의겸 전 대변인은 강한 출마 의지를 보였으나 부동산 투기 논란에 관한 당내 부정적 기류로 중도 사퇴했다.

민경욱·정연국(박근혜정부), 윤태영·정태호·김만수·김종민(노무현정부) 전 대변인도 출마를 본격화하고 있다. 잦은 언론 노출을 통해 얻은 대중적 인지도와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게 이들의 당찬 포부다.

그러나 전직 대변인들의 총선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다. 역대 선거에선 대변인 출신이 경선에서부터 탈락하거나 본선거에서 낙선한 경우가 많았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선 대통령의 호위무사 역할에서 탈피해 본인만의 남다른 정치 콘텐츠를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변인들의 선거 잔혹사

김대중정부 초대 대변인을 지낸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은 초선 의원을 마치고 청와대에 입성했다. 한 달간 대변인으로 지내다가 공보수석을 맡았다. 국회의원 활동을 통해 쌓은 정무적 판단을 인정받은 경우다.

그는 이후 18, 19, 20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됐다. 박 의원은 대변인 경력을 바탕으로 선거에 도전한 게 아니라 정치 인생 도중에 잠시 대변인직을 맡은 케이스다.

박 의원 후임으로 대변인이 된 박준영 전 의원은 대변인을 마치고 바로 국회의원에 도전하지 않고 고향인 전남으로 내려갔다. 차근차근 민심을 얻으며 전남지사를 세 차례 역임하고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하지만 그는 3억여원의 공천헌금을 받은 혐의로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노무현정부의 대변인 성적은 좀 더 초라하다. 정태호 전 대변인은 서울 관악을에만 세 번 도전했으나 야권 분열로 모두 낙천 또는 낙선했다. 천호선 전 대변인은 19대 총선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오 의원과 맞붙었다가 패했다. 이후 2014년 경기 수원정 보궐선거에도 나왔다가 박광온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도중에 레이스를 포기했다. 그나마 김종민 전 대변인이 20대 총선 때 충남 논산계룡금산 지역구에서 당선돼 체면을 살렸다.

이 전 대통령 측근인 ‘8인회’ 멤버로서 이명박정부 내내 실세로 통하던 이동관 전 대변인도 혹독한 선거전을 치렀다. 그는 19대 총선 때 친이명박계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새누리당에서 ‘정치 일번지’ 서울 종로 경선에 나섰다. 그러나 친박근혜계 좌장인 홍사덕 전 의원에게 밀려 탈락했다. 20대 총선 서울 서초을 경선에서는 박성중 의원에게 졌다.

박정하 전 대변인도 20대 총선 강원 원주갑 경선에서 김기선 의원에게 패했다. 박선규 전 대변인은 19대와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서울 영등포갑에 출마했으나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연거푸 패했다.

박근혜정부에선 초대 대변인을 지낸 김행 전 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과 그의 후임이던 민경욱 의원이 나란히 20대 총선에 도전했다. 김 전 원장은 서울 중·성동을에 출마하려 했지만 당내 경선에서 지상욱 의원에게 패했다. 민 의원은 인천 연수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노무현정부 이후 청와대 대변인 출신의 국회의원 당선 사례는 지금까지 3건(김종민·김희정·민경욱)뿐이다. 전문가들은 대변인 선거 잔혹사의 원인으로 타이밍을 꼽는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1일 “대변인들이 정권 초기 허니문 기간에 출마하면 당선될 확률이 높지만 한창 바쁠 때는 열심히 일하다 인기가 사그라드는 시점에서 청와대를 떠나 선거판에 나온다”며 “특히 대변인은 청와대의 입으로 정권과 이미지를 같이하기 때문에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선거에 불리하다”고 지적했다.

윤태곤 ‘의제와 전략 그룹 더모아’ 실장은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정부 대변인 출신 다수가 이번 21대 총선에 출마하기 때문에 주목도가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대변인 틀 깨야 이긴다

청와대 대변인이 정치인으로 성공하려면 본인이 스스로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대변인 경험만 팔지 말고 새로운 정치적 콘텐츠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대변인 출신 대부분이 선거에서 실패한 것은 대변인 경력 하나만 가지고 나왔기 때문”이라며 “유권자들은 정치적 안목과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데 대변인 생활을 했다고 이런 조건들이 자연스럽게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대변인이 대통령 개인을 비호하는 팬클럽에서 벗어나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느낌을 줘야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윤태곤 실장은 “대변인이 사임 후에도 대통령 개인을 계속 따르면 열성 지지자는 좋아하겠지만 결국엔 정치인으로 크기 힘들어진다”며 “대변인 활동을 통해 배운 점을 정책적으로, 정치적으로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대변인 시즌2를 제대로 준비해야 성공한다”고 강조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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