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자고로 낭설의 왕국인가 보다. 소낙비에 놀라… 수많은 송장을 낸 부산운동장 참변이나 설날 고향을 찾아가는 여객들이 층층다리를 먼저 내려 달리다가 산지옥을 보게 된 서울역 구내 사건이나…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하는 서울 거리의 부동하는 군중, 몇 놈 안 되는 공산 도깨비 선동에 홀려 공포로 벌벌 떠는 어리석은 국민….’

YMCA 운동가 오리 전택부 선생이 ‘가짜뉴스’에 휘둘리는 국민성을 염려하며 1970년대 중반 ‘교회연합신보’에 쓴 글이다. 1959년 여름 부산시공영공설운동장 참변과 이듬해 설 서울역 층계 압사 사건을 예로 들었다. 각기 48명과 31명의 사망자를 냈다. 별것도 아닌 일을 누군가 선동해 질서의 마비를 불렀고 참변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참변은 전근대에 더욱 심했다. 자신이 무슨 병으로 죽어가는지도 모르고 오직 생로병사가 하늘의 뜻으로 알았던 시대에 헛소문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궁궐에도 무당과 판수를 들였고 각 관아에는 길흉화복을 점치는 신당을 두었다. 천연두 전염병은 전근대의 대표적 공포였다. 지위 고하가 없고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니 전염병 소문은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원인이기도 했다.

1885년 4월 10일 의료선교사 알렌이 조선의 첫 국립병원 광혜원 원장이 되어 265일간의 진료 기록을 분석해 보았더니 천연두로 죽은 사람이 반을 차지했다. 알렌은 모든 병의 근원은 말라리아 전염병이었다고 했다. 특히 호열자로 불리는 콜레라는 가장 전염 속도가 빠른 괴질이었다.

평양도 이 콜레라 때문에 도시 전체가 무덤이 될 처지에 놓였다. 평양감사가 어떻게든 민심을 다독이고 공포심을 없애기 위해 큰길가에 여성 장승 지하대장군을 세웠다. 그리고 이 전염병의 근원지가 만주나 북간도 쪽이라고 보고 개울을 파게 하여 확산을 막고자 했다. 바이러스가 개울이 있으면 못 뛰어넘는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때 평양 선교에 열심이었던 모펫(한국명 마포삼열) 선교사가 근대적 예방법을 호소했다. ‘익지 않은 참외나 날것을 먹지 말며 옷을 깨끗이 빨아 입고 집 안팎을 청결히 해야 한다’는 인쇄물을 뿌렸다. 그러자 평양감사는 “우리는 우리 풍속대로 해야 한다”며 호통을 쳤다. 그러니 무당과 판수는 관의 보호를 받으며 떼돈을 벌었다.

의료선교사 헤론과 스크랜턴 등이 한양에 들어왔다. 골목길은 보건과 위생 개념이 없으므로 요강 비운 오물로 가득했다. “어떤 때는 말 배때기까지 오물에 빠졌다”고 선교보고서에 기록됐다. 1890년 전염병에 제중원장 헤론이 순직했다. 스크랜턴은 한양 도성 안에 역병 환자 시신이 쌓이자 나막신, 쑥, 관을 가지고 다니며 거두었다. 나막신은 시체 썩은 물 사이를 다니려는 조치였고, 쑥은 코에 찔러 넣어 악취를 피하고자 함이었다.

한데 이들이 두려운 건 정작 따로 있었다. ‘가짜뉴스’였다. 1888년 무렵 백성들 사이에 외국인들이 조선 아이들 눈을 빼서 안경알 삼고 염통을 빼서 약을 만들어 판다는 소문이 돌았다. 서양인은 양귀자 즉 서양 도깨비였다. 성난 군중이 선교사 운영 병원과 학교에 돌을 던지고 난입해서 한동안 폐쇄되기도 했다. 수구파들이 가짜뉴스를 퍼뜨린 것이다. 이를 ‘영아소동’이라 한다.

1894년 무렵 평양에서 가짜뉴스로 인한 또 한 번의 박해가 있었다. 모펫 그리고 의료선교사 제임스 홀 부부가 역병 치료에 나서자 수구파 평양감사가 이를 방해했다. 청·일 전쟁의 전장이 된 평양은 역병 그리고 가짜뉴스에 도시 자체가 마비됐다. 제임스 홀이 평양에서 전염병에 걸려 숨졌다.

코로나19 공포를 확산시키는 가짜뉴스가 디지털시대에도 개울 건너듯 한다. 누군가 이익 보려는 세력이 있을 것이다. 가짜뉴스를 판별하는 지혜, 의료종사자를 위한 기도가 필요한 때다. 교회가 미디어 리터러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바람직해 보인다.

전정희 뉴콘텐츠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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