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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크루즈 여행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1970년대 미국에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TV 프로그램 가운데 ‘사랑의 유람선(the Love Boat)’이 있었다. 호화 크루즈 유람선을 타고 벌어지는 잔잔한 로맨스가 흥미를 끌면서 10년 가까이 방영됐다. 메릴린 먼로가 주연한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에서도 유람선 내의 모습들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크루즈 여행이라면 영화 ‘타이타닉’이 인상적이다. 두 연인이 배 난간에서 두 팔을 쭉 펴고서 행복에 젖어있는 장면이 로맨틱하다. 그래서인지 유람선 하면 로맨스가 먼저 연상되고 사치스러운 여행을 떠올리게 된다. 빙하에 부딪혀 침몰하는 비극을 겪지만 호화롭기 그지없는 ‘꿈의 배’는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호텔’. 크루즈에 붙은 별명이다. 크루즈 여행은 호텔 같은 배에서 먹고 자면서 해안도시나 섬을 순회하는 것이다. 19세기 말 유럽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지중해 유람에서 시작됐다. 1960년대 후반 여행사들이 카리브해 순회상품을 내놓으면서 크게 부각됐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부자들이 호사스럽게 즐기는 것이었다.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멋진 턱시도를 입은 남성과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걸친 여인이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요즘은 일반인들의 이용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크루즈선은 교통수단이라기보다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도시’ ‘안락한 리조트’나 다름없다. 항구에 도착하기 전에는 배 밖으로는 나갈 수 없지만 일류 호텔급의 숙박과 식사는 물론 공연 카지노 사우나 등을 즐길 수 있으며, 다양한 액티비티도 가능하다. 드라이브를 제외하면 뭍에서 할 수 있는 대부분을 만끽할 수 있다. 낮에는 기항지에서 여행을 즐기고, 밤에는 선상에서 마음껏 놀 수 있어 다른 어떤 여행보다 매력적이다. 여러 곳을 다녀도 비행기를 갈아타거나 짐을 쌌다 푸는 번거로움 또한 없다. 이동은 대부분 밤에 이뤄지므로 시간도 절약된다. 자고 나면 ‘당신이 잠든 사이에’ 새로운 나라에 도착해 있다.

최근 이 ‘꿈의 여행’이 ‘바다 위 우한’이 됐다. 일본 요코하마에 정박 중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 탄 승객과 승무원은 지난 3일부터 갇혀 있었다. 지난달 20일 요코하마에서 승객 2666명, 승무원 1045명을 태운 이 배는 일본 가고시마, 홍콩, 베트남 다낭과 카이랑, 대만 타이베이, 일본 오키나와를 거쳐 4일 요코하마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홍콩당국이 지난달 25일 홍콩에서 내린 80세 홍콩 남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걸렸다고 지난 2일 발표하면서 폐쇄공간이 됐다. 전염병을 공항이나 항구에서부터 막는다는 ‘미즈기와(水際) 대책’에 따른 것이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크루즈 여행이 노년층에게 인기가 있어 고혈압, 당뇨 등 질환이 있는 승객이 적지 않아 감염에 취약하다. 제한된 공간에 많은 인원이 머무르면서 코로나19가 크게 번졌다. 하루가 다르게 확진자가 늘면서 ‘바이러스 감옥’으로 변했다. 미국의 CNN 방송은 ‘떠다니는 배양접시’로 빗대기도 했다.

‘크루즈선 악몽’은 크루즈선(船)의 잘못이 아니다. 일본 정부의 잇따른 오판과 늑장 대응, ‘통계 꼼수’ 등 여러 가지 요인이 겹친 결과라는 비난이 거세졌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됐다. 그 바람에 교도통신의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8.3% 포인트나 떨어졌다. 오는 7월 도쿄올림픽 개최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뒤늦게 감염자 조기 발견과 치료로 전환하기로 했지만 ‘매뉴얼 국가’ 일본의 위기관리 능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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