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과 영화 ‘기생충’의 주역들이 19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카데미 후일담을 전하며 크게 웃고 있다. 왼쪽부터 배우 박소담, 송강호, 봉 감독,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정치권에서 봉 감독 동상을 세우고 생가를 보존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데, 봉 감독은 “그런 얘기는 제가 죽은 후에 해주셨으면 좋겠다. 이 모든 것이 다 지나가리라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윤성호 기자

“영화가 긴 생명력을 가지고 1년 가까이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다시 여기로 돌아오게 돼 기쁩니다. 참 기분이 묘하네요.”

한국 영화의 새 역사를 쓴 주인공이라기엔 너무도 무던했다. 칸에서 아카데미(오스카)에 이르기까지 대장정을 마무리한 봉준호(51) 감독은 담담히 소회를 밝혔다. 19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영화사적 사건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 자체가 기억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배우들의 아름다운 연기와 스태프들이 장인정신으로 빚어낸 장면들, 그 안에 들어간 저의 고민들을 기억해주시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은 해외 155개 시상식에서 174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최고상인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4관왕을 휩쓸었는데, 한국 영화 101년 역사상 최초의 쾌거였다.

시상식 전에 작품을 홍보하는 ‘오스카 캠페인’만 장장 6개월간 이어졌다. 봉 감독은 “우리는 ‘게릴라전’을 펼쳐야 했다.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똘똘 뭉쳐 열정으로 뛰었다. 송강호 선배와 함께 코피를 흘릴 정도로 열심히 임했다. 600회 이상의 인터뷰, 100회 이상의 관객과의 대화를 소화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저뿐 아니라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창작자들이 일선에서 벗어나 많은 시간을 들여 캠페인에 나서는 게 낯설고 이상하게 보이기도 했는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작품을 깊이 있고 밀도 있게 검증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국 사회의 불균형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낸 ‘기생충’이 전 세계적인 공감을 이끌어낸 이유에 대해서는 “전작 ‘괴물’ ‘설국열차’도 빈부격차에 대해 다뤘으나 ‘기생충’은 동시대적이고도 현실적이어서 더 폭발력을 갖게 된 것 같다”고 짚었다. 이어 “스토리의 본질을 외면하긴 싫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 최대한 솔직하게 그리는 게 이 영화가 가야 할 길이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평소 존경해 마지않은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에게 편지를 받은 일화도 들려줬다. 봉 감독은 “영광이었다. 맨 마지막에 ‘그동안 고생했고 이제 쉬어라. 대신 조금만 쉬어라. 나를 비롯한 모두가 너의 차기작을 기다리고 있다’고 적혀 있더라”고 전했다. 이어 “2017년 ‘옥자’ 이후 이미 ‘번아웃 증후군’ 판정을 받았는데 ‘기생충’이 너무 찍고 싶어서 영혼까지 끌어모아 완성했다. 이제 ‘좀 쉬어볼까’ 싶기도 한데, 스코세이지 감독이 쉬지 말라고 하셔서 (못 쉴 것 같다)”라며 웃었다.

향후 계획에 대해서도 귀띔했다. 미국에서 제작되는 드라마 ‘기생충’의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영화 두 편도 준비하고 있다. 봉 감독은 “드라마는 초기 구상 단계다. 틸다 스윈튼, 마크 러팔로 캐스팅 기사가 나왔던데 공식적인 사항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영화 두 편은 수년 전부터 준비해온 것으로, ‘기생충’에 대한 반응과 관계없이 평소대로 진행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갈수록 상업성이 우선시돼 다양성이 상실되고 있는 한국 영화산업에 대한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봉 감독은 “한국 영화산업은 지난 20여년간 눈부신 발전이 있었지만 동시에 젊은 감독들이 모험적인 시도를 하기에는 어려워졌다. 1980, 90년대 붐을 이루다 쇠퇴한 홍콩 영화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산업이 더 도전적인 영화들을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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