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밝아도 이미 저물어 있는 게 등이다

뒷모습은 고백을 한다
고백하지 않아도 고백이 된다

척추로 직립한
절벽,
깎아지른 벼랑

갈 수 없는 풍경이 내 몸이라니
한 번도 닿은 적 없는 풍경에 기대어 사는 이여

적막한 등을 등대라고 하자
까끌까끌 부딪치는 모래알

등이 있어
켜는 등

손택수의 ‘붉은 빛이 여전하니까’ 중

손택수 시인은 “시는 그늘에서 와 그늘로 가는 장르”라고 말한다. 시의 고향이 그늘이라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시집에 담긴 저런 시는 시의 정의에 맞춤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아무리 밝아도 이미 저물어 있는” 등을 보면서, 그것은 “척추로 직립한 절벽”이라고 생각한다. “갈 수 없는 풍경이 내 몸이라니”라면서 한탄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등을 볼 순 없지만 타인의 등은 볼 수 있다. 등은 저마다 고백을 하고 있으니, 가끔씩 등(燈)을 켜는 법이니,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번쯤은 그의 등을 바라봐주시길. 혹시 아는가. 간절한 고백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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