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현씨(왼쪽)와 반이정씨가 최근 자신들이 함께 차린 서울 서대문구 갤러리 유진목공소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윤씨가 재미삼아 장식한 문짝을 사이에 두고 포즈를 취했다. 김지훈 기자

서울 서대문구 유진상가 사거리에 위치한 ‘홍은동 목공거리’. 이곳은 한때 목공소가 40여곳에 이를 정도로 번창했던 문짝 제작 목공소 거리였다. 지금은 일대가 재건축 지구로 지정되는 바람에 다 사라지고 두 곳 정도만 남았다. 그중 하나가 유진목공소다. 이곳에서 아버지를 도와 일하던 목수 윤종현(37)씨가 화가 겸 갤러리스트로 변신했다.

그가 미술평론가 반이정(50)씨와 함께 목공소 옆에 ‘갤러리 유진목공소’를 차리고 개관전으로 자신의 첫 개인전을 연 것은 지난해 12월이었다. 어느새 두 번째 기획전을 하고 있는 윤씨를 최근 만났다. 레게머리에 피어싱이라니. 목수나 화가라기보다 래퍼에 가까운 외모였다.

첫 개인전 성과를 물었더니 “9점이나 팔렸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두 번째 전시는 ‘분홍’을 모티브로 김지예 한수정 황소영 세 여성 작가의 작품 세계를 분홍색을 키워드로 해서 들여다보는 기획전”이라고 소개했다.

윤씨가 아버지를 도와 목수 일을 시작한 것은 2009년 무렵이다. 부친인 윤대오 유진목공소 사장은 전통 창호 목공 전문가로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만찬장이었던 청와대 상춘재의 전통 문창살 99짝의 교체를 맡았던 주인공이다.

사진은 윤씨가 조울증으로 입원해 있던 당시에 종이에 수채 색연필로 마음가는대로 그렸던 그림으로 개인전에 나왔다. 김지훈 기자

윤씨가 처음부터 목수 일을 하고자 했던 건 아니다. 그는 영화에 미쳐 고교를 중퇴하고 충무로 영화판에서 5년간 조명팀으로 일했다. 이후엔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조울증으로 수차례 입원하기도 했다. 무엇을 하며 먹고살까 고민하던 시절, 잠시 부친의 목공소 일을 도운 게 계기가 됐다. 손으로 뭔가를 하는 작업이 적성에 맞는다는 걸 그때 알게 됐다.

고교 때 미술시간에 그린 게 마지막이었다는 그는 어쩌다 그림을 그리게 됐을까. 첫사랑의 그녀 때문이다. “목수 일을 처음 할 때 1년 정도 사귀다 헤어지게 됐는데, 이별하고 돌아온 그날 밤 불현듯 그녀의 초상화를 그려서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이 끝나고 퇴근하면 동네 화실에 들러서 기억을 더듬어 그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그 첫사랑이 모티브가 됐다. 그렇게 10년 넘게 독학으로 혼자 좋아서 그렸다. 그러던 2018년 8월 어느 날, 그는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미술평론가 반이정씨에게 자신의 그림 세계에 대해 조언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글을 보냈다. 거기에 반씨가 선뜻 응했다. 심지어 1년간 ‘미술 1번지’ 삼청동의 주요 전시를 동행하며 안목을 키우는 기회를 마련해줬다. 반씨는 “비전공자가 미술 작업을 진지하게 하니 격려해주고 싶었다. 그에겐 미술 전공자에게는 없는 목공 기술이라는 탁월한 능력도 있다”고 말했다.

윤씨의 개인전 ‘그녀에게 Her’에는 지난 10년간 틈틈이 제작한 유화와 드로잉, 목조각 등 40여점이 나왔다. 내면의 심리를 표출하는 표현주의적 성향이 강한 게 특징이다. 신작으로는 목공 기술을 이용한 입체작품도 냈다.

갤러리는 반씨의 제안으로 열게 됐다. 유진목공소 옆 수도 설비를 파는 가게가 이사를 가면서 윤씨가 작업실을 차린 곳이었다. 반씨는 “신진 작가 혹은 잊힌 중진 작가들이 비싼 대관료 때문에 전시를 열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두 번째 기획전 ‘분홍’은 3월 18일까지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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