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짜파구리 파티는 잊었던 얼굴 하나를 떠올리게 했다. 서남수 전 교육부 장관. 박근혜정부 초대 교육 수장이다. 정통 교육부 관료 출신으로 처음 교육부 장관직에 오른 인물이다. 교육부를 나와 지역 대학의 총장으로 재직하던 그가 발탁됐을 때 의외라는 평가가 많았다. 참여정부 시절 교육부 차관 이력 때문이었다. 서 전 장관은 사석에서 “박 전 대통령 집권 초기에는 진영과 상관없이 인재를 등용하려 했고 그 증거가 저입니다”라고 했다. 뭐 그럴 수 있다. 참여정부 부역자란 ‘원죄’에도 출세시켜줬으니 더 복종할 거란 계산이 깔렸을 수도 있고.

그는 라면을 먹다가 경질된 장관으로 기억된다(나중에 실제 이유가 국정 교과서를 반대하다 미운털 박혔다는 얘기가 들려왔지만 문재인정부가 들어서고 “사실은 누가 반대했었다” “누가 직언하다 쫓겨났다” 따위의 미담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국정 교과서 파동 때 침묵했던 그를 변호해줄 마음은 없다).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시간에 먹은 죄였다. 세월호 참사 당시 전남 진도체육관에서 ‘왕뚜껑’ 컵라면의 면발을 들어 올리다 한 진보 성향 매체 카메라에 포착됐다. 온종일 굶다 박준영 당시 전남지사의 거듭된 권유에 젓가락을 들었다고 한다. 학생들은 바닥에 앉아 있는데 팔걸이 있는 의자에 앉아 먹었다는 이유로 ‘황제라면’ ‘라면장관’으로 조롱당했다. “장관님, 컵라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던가요”란 핀잔도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표로 있었던 당시 야당의 의원들은 서릿발같이 매서웠다. “부적절한 행위”라면서 사퇴하라고 쏴붙이는 의원들에게 서 전 장관은 “민망하고 부끄럽다”며 거듭 사과했다. “계란 넣어 먹은 것도 아닌데…”라며 눈치 없이 거들었던 당시 청와대 대변인도 융단폭격을 맞았다. 서 전 장관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어쨌든 박근혜정부 이미지와 달리 소탈한 인물로 기억한다. 그의 장관 부임 초기 인터뷰를 마치고 이어진 저녁 자리에서 장관 되고 언제 가장 뿌듯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잠시 뜸을 들이다가 “아들 장관 된 소식에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무척 기뻐하셨다”는 대답을 들려줬다. 세월호 참사 2년 뒤 그의 모친상 부고가 떴을 때 입안에서 씁쓸한 맛이 났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일 영화 ‘기생충’팀을 불러 오찬을 함께했다. 김정숙 여사가 조리한 짜파구리가 코스 요리 중 하나로 나왔다. 김 여사는 돼지고기 목살과 대파로 맛을 낸 ‘대파 짜파구리’라고 소개한 뒤 “저도 계획이 있었다”며 영화 ‘기생충’의 송강호 대사를 패러디했다. 이날 짜파구리 파티엔 짜장라면 포장지에 얼굴이 새겨질 만큼 유명한 셰프도 동원됐다고 한다. 대통령 내외는 영화 속의 비싼 소고기 대신 돼지고기를 썼으니 서민적 감수성이 풍부한 오찬이란 생각을 하는 듯했다.

흥겨운 청와대 오찬 뉴스를 읽다가 충격적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소식을 접했다. 확진자가 100명을 넘어섰고 첫 사망자가 나왔으며 초등학생 확진자도 있다는 뉴스였다. 전날 대구·경북 방역망이 뚫리면서 우려했던 상황이 실제 일어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며칠 전 “코로나19는 곧 종식될 것”이라 했고, 한 장관은 “국제사회가 한국 방역을 칭찬한다”고 말했었다. 여권에선 “일본이 우리 대응을 부러워한다”는 자화자찬도 나왔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대한민국은 이제 중국과 일본에 이은 세 번째 코로나19 위험국이다.

서 전 장관이 라면 먹고 들었을 말을 대신해 돌려주려 한다. 대통령 면전에서 “경제 거지 같다”고 토로했다가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린치를 당한 상인도 있고, 칼럼 하나 썼다가 여당 의원들로부터 고발당한 교수도 있어 조심스럽긴 하다. 그래서 최대한 정제된 언어로 여쭤본다. 각하, 짜파구리 맛있던가요?

이도경 사회부 차장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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