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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노인 일자리 확대 비판이 안타까운 이유

구윤철 기획재정부 2차관


최근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수상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외국어 영화가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92년 역사상 처음이다. 빈부격차라는 사회적 문제가 전 세계 관객들에게 강렬한 반향을 불러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 역시 빈부격차를 다뤘다. 이 영화는 눈부신 고도 성장기에 ‘한강의 기적’을 이룬 우리 아버지 세대를 그렸다.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고 오직 가족의 부양을 위해 굳세게 살아온 세대의 이면에는 양극화가 있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외화벌이에 나선 이들의 대다수는 상위 0.1%가 아닌 서민들이었다. 두 영화 모두 우리 사회의 당면 과제인 소득 양극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이유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의 배경은 현실이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어르신 계층의 소득 양극화가 매우 심각하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7.7%(2016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선진국과 달리 공적연금이 성숙하지 않은 측면 등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자식을 위해 헌신해 온 어르신 세대는 정작 자신의 노후 준비에는 인색했다.

정부가 어르신 빈곤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노인 일자리를 적극 확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인 일자리는 ‘일하는 복지(workfare)’다. 공적연금의 사각지대에 놓인 어르신들을 보호하는 사회안전망 역할을 맡는 것이다. 많은 어르신은 기초연금 30만원과 노인 일자리 소득 27만원 등을 합치면 큰 도움이 된다고 말씀한다. 물론 아직 충분하지는 않다. 올해 노인 일자리는 모두 74만개다. 지난해 말 기준 노인 인구(약 770만명)를 감안할 때 9.6%가 노인 일자리 대상에 올랐다. 노인 빈곤율(47.7%)을 감안하면 노인 일자리가 필요한 이들 중 20% 정도만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안타까운 점은 이처럼 어르신들에게는 소중한 노인 일자리가 비판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노인 일자리 양적 확대가 일자리 통계를 개선하려는 목적 아니냐는 비판이 아쉽다. 전혀 사실과 다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넘치는 어르신들의 일자리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현재 신청 대기자가 18만명에 이르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유례없이 빠른 속도의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올해부터는 베이비붐 세대의 맏형격인 55년생을 시작으로 밀물처럼 노인 인구가 증가한다. 향후 10년간 노인 인구가 지금보다 약 배 정도 늘어날 전망이다. 이처럼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어르신 일자리 수요를 감안한 조치가 비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일자리 질적 측면에서의 비판도 있다. 허드렛일이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노인 일자리가 요구하는 역량은 젊은이들과 같은 수준은 아닐 것이다. 노인 일자리는 어르신들의 건강과 근로 역량을 감안해야 한다. 크게 학교급식 봉사·학교 교통안전 지킴이 등의 ‘공익형’과 실버카페·실버택배 등 ‘시장형’의 두 갈래로 추진하고 있다. 이에 더해 예산실장 시절 기존 공익형보다 배 더 일하고 배 더 급여를 받는 ‘사회서비스 유형’을 도입한 바가 있다. 유형이 적을 수는 있겠지만 무작정 허드렛일로 폄훼하는 것은 아쉽다.

정부는 앞으로도 지방자치단체·전담기관과 협의해 베이비붐 세대 역량에 맞는 맞춤형 일자리, 도시·농촌 등 지역특화 일자리 등 다양한 노인 일자리 모델을 개발해 나갈 것이다. 어르신들의 경험·체력 등을 감안하는 게 전제다. 아직도 많은 어르신이 노인 일자리를 얻기 위해 긴 줄을 서서 대기하고 계시는 것을 보면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진다. 지난 설 연휴 방문했던 충북 청주 시내의 ‘할머니손 반찬가게’에는 활기찬 모습으로 도시락을 만드는 어르신들이 계셨다. “일하러 나오는 요일이 기다려진다”고 하셨던 한 어르신의 말씀이 뇌리에 남는다.

구윤철 기획재정부 2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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