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눈이 내린 지난 17일 한 플랫폼 배달 노동자가 서울 마포구 지하철 2호선 신촌역 인근을 지나고 있다. 궂은 날씨로 길이 미끄러워지면 플랫폼 업체들은 할증비를 올려 필요한 만큼의 라이더들을 거리로 불러낸다. 김지훈 기자

날씨 따라 환호, 염려 반복하는 ‘블랙코미디’
목숨 걸고 달릴 수 밖에 없는 플랫폼 현실
플랫폼 마음대로 정한 액수에 협상 여지 없어
英 라이더 “작은 일 하나하나 경쟁 치열해져”


지난 12일 예보대로 아침부터 비가 오자 배달의민족 라이더가 모여 있는 오픈채팅방이 들썩였다. 날씨 할증이 붙은 배달비로 올린 수익 인증 글과 “비 오는 날 목숨 걸고까지 배달 못 하겠다”는 푸념이 동시에 올라왔다.

저녁 피크시간이 다가오자 플랫폼 업체 간 라이더를 잡으려는 경쟁이 붙었다. 오후 5시 배민 서울 강남서초점이 할증비를 2000원으로 올리자 쿠팡이츠는 건당 배달료를 1만5000원으로 올렸다. 플랫폼들이 경쟁적으로 배달료를 올리기 시작한 것을 보고 “집에서 쉬다가 결국 나오게 됐다”는 라이더가 점점 많아졌다.

올겨울 들어 서울에 가장 많은 눈이 내린 지난 17일에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쿠팡은 배달 가능한 모든 지역 건당 배달료를 1만5000원으로 올렸다. 평소의 2~3배다. “목숨값으로 살살 꾀어내는 것 같다”는 우려가 쏟아졌지만 결국 오토바이를 모는 라이더들이 적지 않았다.

미끼가 된 위험수당

궂은 날씨가 대목이 되는 건 몇 천원 더 얹어주는 프로모션 비용 때문이다. 일종의 위험수당이다. 날이 궂으면 배달 수요는 많아지고 플랫폼 업체는 조금씩 돈을 올려 라이더를 호출한다. 그들에게 위험을 무릅쓰고 오토바이를 타라는 ‘사장님’은 없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할증과 수수료 한푼을 더 벌기 위해 길바닥으로 향한다. 이때 사용자는 돈인지, 시스템인지, 노동자 자신인지는 알 길이 없다.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 있어요?” 11개월 차 배민 라이더 조준석(가명·35)씨는 “지난해 큰 태풍 왔던 날”이라고 했다. 휴대전화를 슥 뒤지더니 “9월 7일”이라고 한다. 태풍 ‘링링’이 한반도를 덮친 날이었다.

“바람이 너무 심해서 오토바이가 넘어질 정도였어요. 배달이 중단돼 상황을 지켜보던 라이더들도 집으로 돌아갔어요.” ‘운전이 너무 힘들어서 기억에 남았나 보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시간이 좀 지나니까 오후부터 업체들이 배달 중단을 풀었어요. 근데 길도 험하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라이더들이 안 나오니까 관제센터에서 할증을 세게 붙이더라고요. 제 기억으로는 건당 2900원이었던 거 같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우르르 다시 출근하는 거죠.”

조씨도 대기하던 PC방을 나와 다시 배달을 시작했다. 하필 그때 오토바이 바퀴가 터졌다. 태풍에 날아다닌 잔재 탓에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다. 이미 음식을 받아둔 상태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는 바람을 뚫고 오토바이를 찔끔찔끔 끌며 간신히 배달을 마치고는 센터에 오토바이를 맡겼다. “다른 사람들은 그날 1시간에 4만~5만원씩 벌었는데 저는 딱 그거 한 건 하고 집에 갔어요.” 대목을 잡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가장 기억났다는 것이다.

비가 오다 그치면 억울하다. “눈이나 비가 오는 장면을 3초 이상 담은 동영상을 보내면 관리자가 그걸 보고 실제 할증을 붙여 줄지 여부를 판단한다”고 한 베테랑 라이더가 말했다. 비가 그친 상태라면 길바닥이 미끄러워도 할증은 종료된다. 그래서 날씨에 따라 환호와 염려를 반복하는 ‘블랙코미디’가 연출된다.

그런데 위험수당 격인 할증료는 업체 마음대로다. 서울 전역에 비가 내리는데도 주문량이 몰리는 시간대, 수요가 많은 ‘핫한’ 지역에만 할증료가 지정되는 일도 많다. 주문량이 적은 지역은 많은 수의 라이더가 필요없으니 할증을 세게 붙일 이유가 없다. 플랫폼 시스템에서는 노동자를 보호할 규칙이 없어 라이더는 단가 협상에 개입하지 못한다.

업체는 자신들이 정한 규칙을 세워놓고 협상의 여지도 주지 않는다. 한 라이더는 쿠팡이츠에 최근 “눈 때문에 길이 미끄러워 도착이 늦었는데 이거 때문에 평점이 떨어지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쿠팡이츠는 약속시간 내 도착률 등을 점수화해 배차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약속시간도 라이더가 아니라 쿠팡이츠가 정한다. 챗봇 상담원은 그에게 “파트너님,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진행이 어려우시면 오프라인으로 해두셔도 됩니다”라고 글을 남겼다. 일하기 싫으면 그만둬도 된다는 뜻이다.

비정한 플랫폼

배민 라이더 박찬우(가명·23)씨는 얼마 전 사고를 당한 뒤 플랫폼이 차갑게만 느껴졌다. 관제센터에 사고 사실을 전하자 매니저는 “병원 가는 길에 근처 배달을 좀 하면 안 되느냐”고 요청했다. 다른 라이더들이 “다친 사람에게 그럴 수 있느냐”고 따지자 “그렇게 심하게 다친 줄 몰랐다”는 답을 들었다.

“위로도, 보호도 없는 상황에 놓이고 나니 정이 떨어졌습니다. 제가 회사 사람이 아니구나, 단번에 알았어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니 안전을 보장해주는 사람은 없죠.”

자영업자 신분인 라이더는 자유를 누리고 있을까. 3000원짜리 건당 일을 따는 순간 플랫폼의 간섭이 이뤄진다. 음식을 주문한 고객이 항의하면 고객센터는 라이더에게 연락한다. “고객님께서 계속 위치 확인하고 계시니 빠른 배달 부탁드립니다” “(고객님이) GPS로 보고 있는데 다른 곳만 가고 여기는 안 온다고 한다”는 식의 독촉이다. 요청의 형태지만 라이더는 감독받고 있다고 느낀다.

앱을 켜두고 대기할 때도 비슷한 방식의 업무 요청이 많다.

“똥 콜이 계속 밀리면 관제센터가 지입 라이더에게 전화해 처리 요청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전화를 안 받으면 받을 때까지 전화해 콜을 볼 수가 없어요.”<라이더 황정민(가명·25)씨>

“일하기로 한 날은 무조건 나와야 하고, 급한 일로 일을 빼면 단번에 전화 와서 ‘왜 일 안 하느냐’고 독촉하죠.”<라이더 김호영(가명·41)씨>

노동자의 선택인가

궂은 날씨를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할증 금액을 기대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단면은 불안정 노동자인 ‘프레카리아트’(이탈리아어로 ‘불안정’을 뜻하는 ‘프레카리오’와 노동자를 뜻하는 ‘프롤레타리아트’를 합한 말) 시대가 현실로 다가왔음을 보여준다.

국민일보가 ‘플랫폼에 빨려들어간 철수씨’ 시리즈를 취재하며 만난 라이더들은 모두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며 “떠밀렸다”는 표현을 썼다. 특히 실직이나 사업 실패, 자영업 폐업 등을 경험한 가장(家長) 노동자들은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플랫폼에 들어온 노동자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고, 노동 환경은 더 열악한 상황으로 침전하고 있다. “생계에 필요한 만큼의 돈을 벌려면 위험한 환경에 스스로를 내몰 수밖에 없다”는 토로가 많았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플랫폼 일자리는 일감에 대한 예측과 보장이 불분명하다보니 라이더 노동자들이 목숨 걸고 매일 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하고 있다. 지난 14일 영국에서는 유럽판 ‘배달의민족’ 딜리버루의 자의적 정책 변경과 딜리버루 주요 고객 업체를 비판하며 불매운동까지 진행됐다. 프랑스 파리에서도 지난해 8월 딜리버루가 최소 배달 단가를 보장하지 않겠다고 발표해 라이더들이 시위에 나섰다.

“작은 일 하나하나에 대한 경쟁이 너무 치열해졌다. 위험한 상황이다. (실제 배달하는 시간에) 식당에서 음식 나오기를 기다리는 30분을 더하면 국가 최저임금의 절반도 벌지 못하게 된다.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12시간씩 교대로 일하는 부모들이 생계 유지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영국독립노동자연합(IWGB) 배달원 및 택배 지부 소속 그렉 하워드씨의 토로다. 영국의 상황은 한국 배달대행 기사들이 털어놓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전 세계 23개국 앱 기반 운송노동자들은 지난달 말 영국에 모여 회의를 열었다. 각자가 처한 비슷한 상황을 공유하고 공통의 요구를 위한 선언문을 작성하는 게 목적이었다. 이날 회의는 ‘노조를 만들 권리’와 ‘적절한 생활임금 보장’으로 압축됐다.

이는 일자리가 늘수록 노동 환경이 악화되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긴급 대책 성격이 짙다. 딜리버루 노동자들을 위한 법정 싸움을 진행 중인 IWGB는 24일 국민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최소한 노동자들이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아야 최저임금, 휴일수당, 연금 등 근로자 보호에 대한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고 했다.

해외에서는 근로자 지위 인정과는 별개로 노조를 통한 처우 개선 논의를 진행한 사례도 있다. 덴마크 플랫폼 기업 힐퍼의 경우 최초로 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해 최저임금과 유급휴가, 연금, 실업급여 등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보호 장치를 마련했다.

국내에서도 플랫폼 노동자들이 노조를 조직해 교섭력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산하 ‘배민라이더스지회’는 지난 14일 단체교섭 대표노조로 최종 확정됐다. 정 부연구위원은 “지금 플랫폼 일자리 문제 중 하나가 모든 결정권이 기업 측에 있고, 노동자들은 교섭력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플랫폼 노동자들의 수익 악화와 사회적 안전망 마련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우선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기존 개별법의 적용 범위를 넓혀가는 방식으로 플랫폼 노동자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예를 들어 플랫폼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산업재해 관련 법률에 플랫폼 노동자의 가입을 의무화한다는 조항을 추가하는 식으로 적용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계약에 내몰리지 않도록 표준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도 단가 수준이 높지 않은데 경쟁이 점점 심해지면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최소한의 보수를 보장하고 그 토대 위에서 건별로 인센티브를 붙이는 방식 등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산재·고용보험 같은 사회보장 제도나 근로시간·최소보수 등 노동자 처우와 직결된 법률들을 우선적으로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 독일 등 유럽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새롭게 등장한 플랫폼 노동이란 영역을 어떤 제도 내에서 규제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 전문가 사이에선 플랫폼 노동을 기존 노동법 틀에 끼워맞추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박 교수는 “기존 노동법의 근로자 개념이 전통적인 근로 형태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플랫폼 노동이라는 새로운 변화를 따라가기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장흥배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상임연구원도 “플랫폼이 워낙 다양하고 노동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플랫폼마다 개별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플랫폼 경제를 어떤 식으로 활성화할지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유기윤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플랫폼화는 기술 발전 과정에서 반드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생산과 소비 모든 영역에서 플랫폼화가 가속화될 것이고, 대다수 국민이 편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거대 자본이 플랫폼을 독식하면 노동자들은 최소 임금만을 받고 사는 구조로 바뀌게 될 것”이라며 “대규모 자본이 아닌 전 국민이 주주가 되는 크라우드 펀딩 형태의 여러 소규모 플랫폼 형태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슈&탐사팀=전웅빈 김유나 정현수 김판 임주언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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