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푸틴의 기묘한 공생, 올 대선에도 반복될까

11월 美 대선 앞두고… 러시아발 선거 개입 악몽 재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8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이 열린 일본 오사카에서 블라미디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단독회담을 가지면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뉴시스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러시아발(發) 선거 개입 악몽이 재연되고 있다. 미 정보당국은 최근 하원 정보위원회에 러시아가 미 대선 과정에 또다시 개입하고 있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국(DNI)에서 대선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셸비 피어슨은 지난 13일 의회 비공개 브리핑 자리에서 이를 경고했다. 피어슨은 수차례에 걸쳐 러시아가 벌이는 선거 교란 작업들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러시아 정부가 자신들이 원하는 미국 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해 대규모 사이버심리전을 벌인다는 얘기는 새롭지 않다. 미 정보당국은 이미 2017년 1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6년 미 대선 개입을 지시했고, 당선인으로 도널드 트럼프를 뚜렷히 선호했다”는 보고서를 냈다. 다만 이번엔 정보당국이 민주당 경선 선두주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에게까지 “러시아가 당신을 도우려 한다”고 경고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러시아의 본심을 두고 몇 가지 설이 충돌하고 있다.

러시아는 왜 미국 대선에 끼어드나

푸틴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재벌) 세력은 자신들의 과두 독재체제에 대한 내부 불만이 높아지고 경제침체가 길어지자 그 책임을 외부 가상의 적으로 돌리는 전략을 펴기 시작했다. 2014년 12월 발표한 새로운 군사교리가 대표적이다.

군사교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러시아의 최대 위협”이라고 명시했다. 미국 중심 유럽 최대 안보동맹체의 통합이 러시아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동시에 국민들에게는 강대한 소비에트연방(소련·러시아의 전신)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이 같은 기조하에 러시아는 우크라니아 등지로의 팽창을 정당화했다. 자국은 제국으로 남되 서방세계는 독립된 민족국가 단위로 분열시킨다는 대외전략이 일관되게 유지됐다.

최근 러시아의 개입이 있었다고 의심받는 일련의 사건들은 서구 통합에 반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트럼프가 당선된 2016년 미국 대선이 대표적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트럼프의 신고립주의는 서방세계의 균열을 꾀하는 러시아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졌고, 트럼프가 그들의 경주마로 선택됐다.

러시아는 지난 미 대선 기간 미국인으로 위장된 가짜 소셜미디어 계정을 대량으로 만들어 트럼프에 유리한 가짜뉴스들을 살포했다. 러시아군 소속 해커들은 민주당 전국위원회(DNS)와 힐러리 클린턴 선거캠프 관계자들의 이메일을 해킹해 얻은 민감 정보들을 가짜뉴스와 결합해 적극 유포했다. 트럼프 진영은 러시아 측이 유출한 자료를 경쟁자인 클린턴을 공격하는 소재로 악용했고 실제 효과도 거뒀다. 러시아의 대선 개입이 트럼프 당선에 핵심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러시아의 ‘샌더스 지원설’ 실체 있나

러시아가 트럼프 지원을 넘어 민주당 경선에까지 개입해 샌더스를 도왔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미 정보당국은 피어슨의 브리핑 실수일 뿐 ‘러시아의 샌더스 지원설’은 실체가 없다는 입장이나 의혹을 둘러싼 말들이 무성하다.

일부 미 국가안보 관료들은 러시아의 목표가 단순히 트럼프 대통령을 재선시키는 데만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러시아가 트럼프를 선호한다는 것은 그가 거래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차원이지 특별히 그를 샌더스 등 민주당 대선주자들보다 더 선호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급진좌파로 평가받는 샌더스가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보호무역주의와 자국 우선주의 통상 정책을 주장하며 고립주의 성향을 보인다는 것도 서구의 분열을 꾀하는 러시아 입장에선 달가운 점이다.

러시아의 목적은 미국 민주주의의 훼손 그 자체에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보당국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아슬아슬하게 당락이 갈리고 재검표가 이뤄지는 민주당 주(州) 경선에서 공작을 벌이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동맹’의 로라 로젠버그 선임연구원은 “민주당 경선에 불화를 조성하려는 러시아의 시도는 민주주의 제도와 절차에 대한 미국인들의 믿음을 훼손시키려는 전략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적 혼란을 부추겨 미국인들의 정치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을 키우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물론 러시아의 일차 목표는 ‘트럼프 재선’이라는 주장도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나토 유럽 회원국들에 방위비 인상을 압박하며 동맹에 균열을 일으키는 트럼프를 러시아 입장에서는 가장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러시아가 민주당 경선에 개입해 급진좌파로 평가받는 샌더스를 돕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트럼프의 재선을 수월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전현직 미 관료들을 인용해 “러시아는 잠재적으로 샌더스를 민주당의 다른 온건파 후보들보다 트럼프에게 쉬운 상대로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진영은 올해 대선 프레임을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대결로 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구도를 완성하는 데 샌더스는 제격이다. 트럼프 진영은 무상 대학교육, 전국민 의료보험 등 미 사회에서는 파격적인 공약으로 내세우며 ‘사회주의자’라는 별명을 얻은 샌더스가 최종 대선 경쟁자가 될 경우 중도 유권자들이 트럼프 쪽으로 넘어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러시아의 판단과 트럼프 진영의 기대가 일치하는 셈이다.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설의 실체가 무엇이든 러시아와 트럼프의 기묘한 공생관계는 이번 대선에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3차 경선인 네바다 코커스에서 샌더스가 압승을 거둔 뒤 트럼프는 샌더스가 대선후보가 되길 원치 않는 민주당 주류가 의도적으로 ‘러시아의 샌더스 지원설’을 흘리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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