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공중보건의 A씨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대구로 차출됐다. 7시간 내내 확진자 건강 체크를 하고 퇴근한 그는 편의점에서 햇반과 김치를 사 왔다고 했다. “병원 주변에 문 연 음식점도 몇 개 없고, 혹시나 제가 감염돼서 남한테 병을 옮길 수도 있잖아요.” 20대의 젊은 의사는 그렇게 부실한 식사로 속을 달래가며 코로나와 싸우고 있다.

A씨는 3교대로 일한다. 방호복으로 무장하고 격리병동에 들어간다. 일일이 확진자의 상태를 점검한다. 방호복을 입으면 숨이 차고, 더워서 온몸이 땀범벅이 된다. 폐활량이 좋은 20대도 1시간 이상을 버티기 힘들다. 그래서 회진 때마다 전쟁이 벌어진다. 병에 걸릴지 모른다는 부담감에 더해 언제 끝날지 기약 없는 고된 나날이 A씨를 짓누르고 있다. 가족들조차 만류하던 대구행(行)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끊임없이 기침을 하는 환자를 보면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고 했다. 의사이기에 험지로 왔고,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게 A씨의 말이다.

최근 A씨는 공문 하나를 받았다. 보건복지부가 장관 명의로 대구 차출 의료진에게 보낸 것이다. ‘근무지를 이탈하면 이탈일수의 5배 기간을 연장해 근무를 시키겠다’고 쓰여 있었다. ‘감염 관리를 위해 외출을 자제해 달라’고만 해도 되는 일이었다. 실제로 의료진 대부분은 일이 끝나면 바로 숙소로 돌아가 자가격리를 하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정부가 협박성 경고를 한 것이다. 전라남도는 관내 의료기관에 보낸 공문에서 ‘검체 채취 시에는 전신보호복 대신 가운 착용을 권장한다’고 명시했다. 보호복 물량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치료 장비를 늘리는 대신 일선 의료진을 위험으로 몰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정부는 업무활동장려금 명목으로 하루에 4만5000원씩을 의료진에게 주고 있는데 초과근무·위험근무 수당은 쏙 빠져 있다. A씨는 “돈을 더 받자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를 노예처럼 취급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다. 제발 일하고 싶은 의욕을 꺾지 말아달라”고 했다.

의료진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사회. 더 나아가 그들을 잠재적 감염자로 보는 시선. 전염병이 터질 때마다 바이러스처럼 반복되는 풍경이다. 6년 전 에볼라 때다. 의료진 일부가 아프리카로 파견됐는데 관련 기사에 이런 댓글이 수천개 달렸다. ‘파견해서 못 들어오게 하면 되겠다’ ‘누가 지원했는지, 가족과 국민 생각은 안 하나?’ 사람을 살리기 위해, 감염병을 공부한 내 소명이라며 지구 반대편 에볼라의 땅으로 떠난 의료진은 그렇게 매국노 취급을 당했다.

2009년 신종플루 사태 당시도 비슷했다. 치료를 전담하던 대학병원 의사의 신상이 공개됐다. 그 의사의 자녀는 “부모에게 신종플루를 옮아 우리 아이에게 옮기면 어떡하냐”고 항의하는 학부모들 탓에 학교에 가지 못했다. 영웅들을 정중하게 대접하진 못할망정, 쉬쉬하고 기피하며 “그게 너희 일 아니냐”고 하는 너절한 사회. 이기주의가 팽배한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의료진의 기를 꺾고, 홀대하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의료진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그들의 사명감에 상처를 내는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다면 병균에 맞설 용사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더 큰 질병이 범람했을 때 아무도 나서지 않을 것이다. 현장 상황은 하나도 모르면서 자꾸 의료진의 손길에 정치(政治)를 덧입히는 국회와 의료 인력을 존중하지 않는 정부, 그리고 의사와 간호사의 노력에 무관심한 다수가 사선으로 떠나는 의료진의 발을 머뭇거리게 할까 두렵다.

한때 미국에선 에볼라 환자를 돌보고 귀국한 의료진을 ‘격리’하는 문제로 논란이 일었다. 해당 의료인은 일방적 격리는 ‘인권 침해’라며 반발했다. 그러자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그들은 우리의 영웅이다. 그들의 사기를 꺾는 건 우리 스스로 책임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했다. 눈앞에 닥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을 정당하게 대우하는 나라. 이것이 바로 국가의 품격이다.

정부는 말만 ‘의료진분들 파이팅’ 하지 말고 이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과 복지를 약속하라. 또 의료진을 폄하하는 사회 통념을 바꿀 만한 비전을 제시하라. 코로나 사태 극복은 의료진에 대한 처우와 인식 개선을 통해 국가의 품격을 바로 세우는 작업에서 시작될것이다.

박세환 정치부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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