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 ‘철수 이야기’ 주인공인 소년 해수(왼쪽)와 강아지 철수. 책에는 해수와 철수가 산과 들과 논밭을 돌아다니며 눈부신 추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돌베개 제공

“네 이름 철수 할까? 내가 해수니까 너는 철수.”

그렇게 강아지한테는 ‘철수’라는 이름이 생겼다. 이름을 붙여준 이는 여섯 살 소년 해수. 해수와 철수는 복숭아꽃이 활짝 핀 어느 봄날에 처음 만났다. 만남의 장소는 강원도 춘천 시골 마을에 있는 해수네 할아버지 집. 해수는 몸이 약한 엄마가 동생을 임신하면서 할아버지 집에서 살아야 했다. 그런 해수에게 철수는 유일한 친구였다. 래브라도레트리버인 철수는 덩치가 컸기에 ‘실내 생활’을 할 수 없었다. 해수는 눈만 뜨면 철수를 데리고 동네 곳곳을 쏘다녔다.

철부지 소년과 천방지축 강아지가 만났으니 사건이나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철수는 이웃집 삼밭을 헤쳐 놓았고, 독사와 싸움을 벌이느라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해수와 철수는 여름이면 동네 하천에서 물놀이로 했고 겨울에는 눈밭을 뛰놀았다. 그렇게 둘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철수 이야기’(전 2권)는 소년과 강아지 사이에 움튼 우정을 다룬 만화책이다. 스토리 전개는 기승전결의 구조를 띠지 않는다. 자극적인 부분도 없고, 클라이맥스라고 판단되는 부분도 찾기 힘들다. 별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시골의 일상이 흑백의 그림체로 펼쳐질 뿐이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고 있노라면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어사무사해진 어린 날의 추억을 되새겨보게 된다.

특히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생명의 신비를 전하는 장면이 일품이다. 작가는 해수와 철수의 일상을 통해 “가을이면 낙엽이 떨어지고 겨울에는 눈이 쌓였다가 봄이 되면 모두 흙으로 돌아가는” 사계절의 풍경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살아있는 것들을 향한 애정어린 시선도 느낄 수 있다. 가령 멧돼지가 마을까지 내려와 논밭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자 어른들은 멧돼지 사냥에 나서는데, 작품 속에는 이런 내레이션이 등장한다. “(어른들은) 멧돼지가 어쩌다 집을 잃고 굶주리게 됐는지는 고민하지 않았다.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면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지를 생각하기보다는 그를 적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른 해결책이니까.”

그래도 ‘철수 이야기’의 백미는 해수와 철수가 주고받는 진한 우정이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숲에서 해수는 철수의 등허리를 베고 누워 이렇게 말한다. “철수야,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기서 살 건데 너는?” 물론 해수의 이런 다짐이 지켜질 리 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둘은 소원해지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어른이 된 해수는 그 옛날 자신에게 유일한 벗이었던 철수를 떠올리게 된다. 이 지점에 이르면 누구나 가슴이 먹먹해질 것이다.

만화를 그린 작가의 필명은 ‘상수탕’이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했고 현재는 춘천에 살고 있다. ‘철수 이야기’는 그가 이런저런 사회생활을 하다가 내놓은 첫 책이다(작가 요청에 따라 본명이나 나이, 그의 이력 등은 밝히지 않겠다). 상수탕이 처음 ‘철수 이야기’를 그리기 시작한 건 2018년 1월이었다.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았기에 “손이 풀리는” 시간을 견뎌야 했다. ‘철수 이야기’는 다음 웹툰에 연재됐는데 처음엔 반응이 시원찮았지만 차츰 그의 만화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었다.

상수탕은 국민일보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처음 만화를 그리기 시작할 때는 ‘왜 내가 이런 짓을 해야 하나’ 회의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댓글이나 메일을 통해 위로나 위안을 얻었다는 반응이 오기 시작했고, 그런 글을 읽으면서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세상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게 충격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책날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부엽토 깔린 닭장을 마련해 매일 다섯 개 이상의 달걀을 수확하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어떤 뜻인지 가늠하기 힘든 문장이었는데 상수탕은 이렇게 설명했다.

“부엽토가 깔린 닭장을 마련하려면 산 근처에 살아야 해요. 낙엽이 썩어서 생긴 흙이 부엽토니까요. 그리고 달걀을 매일 5개 이상 얻으려면 닭을 10마리쯤은 키워야 합니다. 책날개에 적은 글은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은유적인 표현이에요. 언젠가는 이 꿈을 이루고 싶어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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