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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문재인 그리고 제럴드 포드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1918년 스페인독감은 최소한 5000만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당시만 해도 바이러스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그로부터 58년이 지난 1976년 2월 미군 한 명이 독감에 걸렸는데, 안타깝게도 폐렴이 악화해 사망하고 만다. 그 뒤 몇 명의 미군들이 독감에 걸렸다 회복됐다. 보건 당국은 여기서 스페인독감이 다시 유행할지도 모른다는 징후를 읽었다.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1918년과 달리 1976년의 미국은 바이러스를 분리하고 백신을 제조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의학계는 독감백신 접종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고, 제럴드 포드 당시 대통령은 TV 앞에서 전 국민에게 백신을 접종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위협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국민의 건강을 걸고 도박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야심 찬 프로젝트는 아쉽게도 실패로 돌아갔다. 그해 유행했던 바이러스는 스페인독감과 달리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았다. 당시는 백신에 대한 신뢰가 덜할 때였는데, 독감에 걸린 이들이 금세 회복되는 걸 보고 “괜히 맞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여기에 더해 백신으로 인한 부작용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접종 초기 백신을 맞은 노인 3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더니, 손과 발에서 시작해 몸 전체로 마비가 진행되는 기묘한 증후군이 백신을 맞은 아이들에게 생겼다. 결국 접종은 중단됐고, 이 여파로 포드는 재선에 실패한 미국의 첫 번째 대통령이 됐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정체불명의 폐렴이 발생했다. 이 소식은 전 세계로 퍼졌고, 우리나라 언론도 이를 보도했다. 이 뉴스에 대해 지난해 12월 31일 달린 댓글을 보자. “당장 중국여행 규제해라. 중국인들도 못 오게 하고, 시진핑 할애비가 와도 못 오게 해라.”

불과 4년 전 메르스 참사를 겪었음에도, 우리 정부는 일개 네티즌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대책을 취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바이러스는 곧 우한 전체를 집어삼켰다. 감염자는 물론 사망자가 속출했다. 인구 1000만의 우한은 죽음의 도시가 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1월 19일, 우한에서 온 중국인 여성이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과정에서 발열 증세를 호소했다. 코로나19의 1번 환자였다. 환자는 시나브로 늘어만 갔다. 의사협회는 중국인 입국을 금지할 것을 촉구했다. “국가 간에 퍼지는 전염병은 해외에서 유입을 차단하고 그 뒤에 지역사회로 전파되지 않도록 2~4차 감염을 막아야 한다.” 이를 지지하는 청와대 청원에는 76만명이 동의했다.

정부는 호소를 외면했다. 대신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는 말로 극성 지지자들, 소위 문빠들의 심금을 울렸다. 환자 수가 30명까지 늘어나다 소강상태에 이르자 대통령은 일상생활로 복귀할 것을 촉구했다. 하루가 지난 뒤 신천지 교인들 사이에서 환자가 무더기로 생기기 시작했다. 하루에 100~200명씩 환자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사람들은 외출을 끊었고, 생필품을 사재기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통령은 다시 시진핑에게 전화해 상반기 중 우리나라에 와달라고 애원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코로나19 환자 수는 세계 2위다.

다른 나라들은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중이며, 그 나라들엔 중국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대통령과 문빠들은 신천지에 모든 책임을 돌리고 있다. 의학계의 말을 듣다가 망신을 당한 포드, 의학계의 말을 듣지 않아 망신을 당한 문재인, 결과는 같지만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면 난 당연히 포드다. 국민의 건강을 걸고 도박을 하는 대통령은 나쁜 대통령이고, 설령 실패한다 하더라도 과한 예방이 어이없는 방심보다 훨씬 나으니 말이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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