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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이러다 ‘제2의 우한’ 될라

배병우 논설위원


병실 부족으로 대구 확진자의 절반 이상이 자기 집에 격리… 의료시스템 이미 과부하
감염원 유입 차단 실패한데다 비축 물자도 준비 안해
서울 등 타 지역으로 확산 땐 심각한 의료 위기 가능성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하지도 않은 지난달 중순부터 판데믹(세계적 대유행) 가능성을 언급했다. 중국의 방역 노력이 성공적이라는 점만을 강조한 세계보건기구(WHO)와 대조됐다. WHO는 여전히 판데믹 선언을 미루고 있지만, 감염병 학자들 사이에선 이미 판데믹에 진입했다는 공감대가 이뤄지고 있다. 마크 립시치 하버드대 교수는 “WHO가 뭐라고 하건 현 상황은 감염학적으로 규정된 판데믹 정의에 들어맞는다”고 했다.

이처럼 짧은 시간에 대확산이 발생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숙주인 인간의 치사율은 낮추는 대신 감염력은 크게 높이는 쪽으로 영리하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잠복기에도 바이러스 전파력이 강하고 초기 증상도 감기 몸살과 비슷해 감염 여부를 알아채기 어렵다. 이렇게 되면 체온 발열 여부로 의심 증상을 점검하는 공항 방역도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CDC가 일찍부터 판데믹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최근 2주간 중국을 다녀온 외국인의 미국 입국을 지난달 31일부터 전면 금지했을 것이다. 한국은 이보다 나흘 뒤인 지난 4일에야, 그것도 후베이성 방문자에 한해 입국 금지 조처를 내렸다. 그래서 CDC가 지난 25일 “판데믹이 임박했다. 미국도 지역사회 감염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힌 의미는 가볍지 않다. 글로벌 공급망 차질과 각국의 국경 폐쇄로 경제 피해가 예상보다 훨씬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문제는 코로나19가 판데믹인지 아닌지, 또 그로 인한 세계 경제 파장이 얼마나 될지 걱정하는 게 한국인에게는 사치일 수 있다는 점이다. 소득이 얼마나 줄어들 것인가를 떠나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안심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27일 오전 현재 확진자가 1017명인 대구에서 병상이 부족해 자가격리 중인 환자가 570여명에 이른다. 이날 국내 확진자 중 13번째로 사망한 환자도 74세의 고령인 데다 만성질환자였다. 그렇지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집에서 입원을 기다리다 사망했다.

앞으로 확진자라도 입원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확진자를 치료 중인 의료진으로 꾸려진 ‘중앙임상위원회’는 “코로나19의 경우 비교적 중증이라도 병원에서 산소치료 등 적절한 치료만 있으면 사망에 이르지 않는다”며 경증환자의 자가격리 치료를 주장했다. 하지만 감염내과 의사 중에는 코로나19 환자의 경우 경증과 중증을 판별하기 매우 어렵다는 이가 적지 않다. 돌발 상황 시 의료진의 돌봄이 불가능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가족까지 집단감염시킬 가능성도 크다. 비틀비틀 걸어가다 거리에서 쓰러지는 등 코로나19가 무섭게 퍼질 때 중국 우한에서 찍은 동영상 장면이 재연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의료 자원이 코로나19 방역과 치료에 쏠리면서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가 커지는 것도 문제다. 경증환자는 아예 치료 기회가 없는 것은 물론 암 등 중증질환자, 희귀질환자, 응급환자 등의 수술과 치료도 어려워지고 있다. 혈액 부족도 악화하고 있다. 서울 등 다른 지역 병원도 확진자가 늘고 있어 예외가 아니다.

‘최대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능력(surge capacity)’은 한정돼 있는데 보건 당국은 중국으로부터 감염원 유입 차단에 실패해 코로나19에 대응할 시간을 벌지도 못했다. 미국은 2000년대 들어 국가판데믹전략(National Pandemic Strategy)을 수립해 철저히 준비해 왔다. 의료 물자도 거점지역에 비축해 놓고 있다. 한국은 대구시의 고군분투에서 드러나듯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바이러스 최전선에서 싸우는 의료진이 의료용 방호복과 마스크가 부족하다고 호소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은 확진자가 대구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다른 지역에서도 확산이 일어나는 경우다. 고려대 구로병원 김우주 감염내과 교수는 “확진자들의 긴 동선과 세계적으로 높은 인구 밀도 등을 볼 때 다음 주 이후 다른 지역에서도 감염자가 쏟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동원 가능한 병상을 크게 늘리고 우한 교민 귀국 때처럼 공무원연수원 등을 격리시설로 변경하는 등의 획기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시간이 촉박하다.

배병우 논설위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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