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시론

[시론] 산업강국 실현, 중견기업이 선도한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연필의 길이는 누가 정했을까. 주인공은 독일인 로타르 폰 파버다. 1840년 손목에서 중지 끝까지 길이를 재서 7인치(177.8㎜)를 제안했고 지금도 국제 표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당시 그는 256년간 9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독일 중견기업 파버카스텔의 4대 회장이었다. 파버카스텔은 자신만의 전문 분야에서 특화된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작지만 강한 독일의 ‘히든 챔피언’ 기업이다. 14개국에 생산 공장이 있고 매년 1조원 이상 매출을 거둔다. 독일에는 파버카스텔처럼 세계 시장 3위 이내이면서 매출액 6조원 이하 기업이 1300개가 넘는다. 히든 챔피언 기업들의 뒷받침은 독일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할 때 밑거름 역할을 했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산하 중견기업연구센터는 중견기업의 건실함을 미국 경제 건전성의 중요 지표로 보고 있다. 실제 미국의 중견기업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2011년 연평균 3.8%의 고용증가율을 기록해 -9.5%를 기록한 대기업보다 위기에 강함을 입증했다.

한국 경제의 중심에도 중견기업이 있다. 일본의 갑작스러운 수출 규제 조치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화학소재 전문 중견기업들이었다. 정부가 중견기업 육성책을 꾸준히 펴 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4년 ‘중견기업 성장 촉진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시작으로 중견기업이 중소기업으로 회귀하려는 일명 ‘피터팬증후군’을 완화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 왔다. ‘월드클래스 300’ 사업을 통해 유망 중견·중소기업을 집중 육성하고 무역보험 등 정책금융으로 해외 시장 진출도 지원해 왔다. 그 결과 중견기업의 수는 2015년 3558개에서 2018년 4635개로 증가했다. 숫자로는 0.7%에 불과하지만 국내 기업 전체 매출의 15%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규모만 성장한 것이 아니다. 독일에 파버카스텔이 있다면 한국에도 세계를 이끄는 중견기업들이 있다. 반도체 계측장비업계의 선두주자인 A사는 세계 최초로 3차원 측정 기반 자동검사 장비를 개발해 전 세계 100여개 글로벌 전자제품과 반도체 업체에 납품하고 있다. 세계 4위 다이아몬드 공구 전문기업인 B사는 매출의 65%를 수출한다.

그렇다고 완벽한 것은 아니다. 아직 매출액 3000억원 미만 초기 단계의 중견기업이 전체의 84%를 차지하고 있다.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은 아직 2% 수준에 머무른다. 선진국에 비해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춘 글로벌 전문기업도 적다. 극복해야 할 한계다. 때문에 그간의 성과를 토대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만한 경쟁력 있는 중견기업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대책을 최근 발표한 ‘제2차 중견기업 성장 촉진 기본계획’에 담았다. 중견기업을 산업정책과 지역경제의 핵심 주체로 보고 규모·성장 단계별 맞춤형 지원과 투자·혁신 활동을 유도하는 데 중점을 뒀다.

규모와 특성이 다양한 중견기업군을 골고루 키워내는 방안이 이번 기본계획의 핵심이다.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50개 이상의 유망 중견기업을 발굴해 세계적 전문기업으로 육성하고, 지역경제를 견인할 대표 중견기업 100개를 지원한다. 초기 단계 중견기업에는 9000억원 규모의 R&D 예산과 혁신 인재 확보를, 규모가 있지만 성장이 정체된 중견기업에는 신사업 발굴부터 사업화 전략 수립까지 전 단계를 지원할 계획이다. 한·독 소재부품기술협력센터와 중견기업우수기술연구소 등을 통해 개방형 기술 혁신과 역량 강화도 도모해보려고 한다. 1000억원 규모의 중견성장펀드 등 금융 지원도 대폭 확대할 예정이다.

이제 시작이다. 4차 산업혁명의 파고에서 미래차, 시스템반도체, 바이오 등 신산업 창출과 산업 지능화는 시대적 요구다. 이에 부응하는 중견기업의 과감한 도전과 혁신을 응원한다. 흔들림 없는 산업 강국. 그 중심에 중견기업이 첨병으로 설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