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장요나 (3) 이단에 빠진 간호장교 구해줬더니 결혼하자며…

청력 잃고 처지 비관하다 이단 늪으로… 끈질긴 설득과 기도에 서서히 마음 돌려

장요나 선교사가 1968년 7월 베트남 나트랑에서 십자성 부대 감찰부에 근무할 때 찍은 사진.

그 간호장교라면 나도 보고 들은 바가 있었다. 옷차림은 수수한데 스타킹은 찢어진 걸 신고 다니고, 옷도 사 입지 않고 헌 옷만 고집했다. 병원 피엑스에서 박카스 병을 줍고 다녀서 한눈에 봐도 이상해 보였다. 그녀는 중위, 나는 사병이었다. 아무리 명령에 살고 죽는 군대라지만 상사를 이단에서 빼 오라는 명령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간호장교를 만났다. 이단 종교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려는데 간호장교는 내 말을 막으면서 자신의 종교에 대해 비판하려거든 한 번이라도 자신이 다니는 공동체에 오라고 말했다.

그곳에 가보니 뭐가 문제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성경책은 같았지만 해석이 달랐다. 찬송가도 따로 있었다. 무엇보다 목사 자신이 재림 예수라 하면서 자기가 세상을 구원할 자라고 했다. 이보다 더 명확한 이단의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간호장교에게 그곳의 교리가 잘못됐다고 이야기했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오히려 나를 사탄이라 몰아세우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간호장교의 속사정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간호장교가 여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국방부 장학금으로 간호대학에서 공부할 때만 해도 누구보다 똑똑하고 사리 분별이 정확했다고 한다.

그런데 국방부 장학생으로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간호장교 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대구 군의학교에서 사격훈련을 받다가 오른쪽 귀를 다쳤고 청력을 잃었다. 청각 장애인이 된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소홀해졌다. 그러면서 이단에 빠진 것 같았다.

나는 화를 내며 피하는 간호장교를 따라다니며 진심으로 설득했다. 점심시간에는 식판을 앞에 두고 그녀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고 냉대와 수모를 감수했다. 그러자 간호장교도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때 간호장교와 같은 이단에 빠진 A대학 여대생이 농약을 먹고 죽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단을 반대하는 부모에게 자신의 종교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무슨 독을 마셔도 죽지 않는다’는 말씀을 잘못 해석한 교주의 말을 믿고 농약을 먹었다 참사를 당한 것이다. 그 신문기사를 보여주자 간호장교도 마음을 돌려 이단에서 스스로 빠져나왔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간호장교가 나를 붙잡고 늘어졌다.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가 만났으니 한 몸 되어 잘살아 보자고 주말마다 찾아와 졸랐다. 거절해도 소용없고 피해도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더 괴로운 것은 병원 사람들조차 나와 간호장교가 사귄다고 믿는 것이었다. 둘이 설전을 벌이는 것을 사랑싸움으로 오해한 것이다. 부인하고 해명해도 다들 농담으로 받아들이며 나와 간호장교 사이를 공식적인 관계로 여겼다. 잘못하다가는 뜬소문에 밀려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할 판이었다. 견디다 못해 나는 베트남 파병을 자원했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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