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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풍경화] 코로나가 가르쳐준 것들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매출이 뚝 떨어졌다. 코로나 초반엔 마스크와 먹거리 판매가 늘며 썩 반갑잖은 호재더니 확진자가 늘어나며 매출은 거친 내리막길이다.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 자체가 확연히 준 것을 느낀다. 건물 곳곳에 ‘마스크를 착용하시오’라는 공고가 붙고, 출입문 몇 개는 폐쇄됐다. 이웃 식당 입구에 세워진 표지판에는 ‘마주 앉지 않고 나란히 앉기’ ‘식사 중에는 대화 자제하기’라고 적혀 있다. 편의점 근무자들에게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토록 했고, 입구에는 손세정제가 비치됐다. 오전 근무 아르바이트 직원은 10분이 멀다 하고 열심히 손을 씻는 중이다.

손님이 뜸한 사이 냉장고와 진열대를 정리하다 다른 점주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영등포 점주는 말 그대로 매출이 ‘반 토막’이라고 길게 한숨을 내쉬고, 성동구 점주는 이번 달엔 임대료는커녕 전기료조차 건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한다. 휴대폰 너머로 울먹이는 표정이 그려졌다. 확진자가 발생한 동네에 있는 어떤 점주는 태풍 매미가 왔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20년 동안 편의점을 운영하며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고 회고한다. 태풍보다 더한 재난이 우리를 휩쓰는 중이다.

일상이 바뀌었다. 오후에 편의점에 찾아와 언제나 활짝 웃으며 택배를 수거해가던 기사님의 미소도 이제는 마스크 뒤에 숨어 있고, 단골손님이 오면 신용카드나 휴대폰을 건네받아 결제해주던 풍경도 오늘부턴 일체 접촉하지 않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서로가 눈빛으로 안부를 주고받는다. 근무를 마치면 뿌듯한 마음으로 찾아가던 동네 스포츠센터 입구에는 기한을 알 수 없는 휴관 안내문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고, 주말마다 심장을 뛰게 하던 마라톤 대회도 속속 취소되는 중이다. 오늘 저녁에는 뭘 해야 하나, 이번 주말에는 뭘 해야 하나, 고민한다.

밀렸던 책을 꺼내 목차를 훑고, ‘보고싶어요’ 폴더에 찜해 두었던 영화 목록을 차분히 살핀다. 창고를 정리하다 오래도록 먼지가 쌓여 있던 통기타를 발견하고는 몇 년 만에 현을 조율해본다. 한창 열심히 모으다 어느 날 시들해졌던 피규어도 반짝반짝 닦아 진열대에 새로 자리를 정한다. 사놓고는 몇 번 하다 말았던 보드게임이 거실 테이블에 다시 등장해 가족들이 둘러앉는다. 우리에게 소중했던 것들을 떠올리며 이번 파도가 지나가면 실컷 그것들을 사랑해주겠다고 수다를 떤다. 침대에 기대앉아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나 뉴스를 살펴보다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린다. 예전에는 이따금 한 번이더니 요즘엔 매일 밤 “오늘은 어떠셨어요?”를 묻는 갑작스러운 효자가 됐다.

새벽에 찾아오는 손님에게 예전보다 밝은 목소리로 인사말을 건네려 노력한다. “좋은 하루 되세요!” 편의점 점주들의 단톡방이 톡톡톡 요란해진다. “발주는 끝내셨죠?” “오늘도 파이팅!” “다 지나가겠죠.” “함께 이겨냅니다.” “최 사장, 잘 지내나? 힘내!” 서로를 응원하는 말들이 줄을 잇는다. 언젠가 다툰 뒤로 한동안 서먹했던 친구에게도 힘내라고 슬쩍 이모티콘을 보낸다. 이깟 바이러스가 우리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안다.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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