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화를 통해 미국과 맞설 수 있는 제국으로 발전하려는 중국몽을 강타했다. 세계 어디를 가든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이 흘러넘치는 것처럼 중국발 코로나19는 전 세계를 감염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로 드러난 것은 세계화의 경제적 취약점만이 아니다. 국가자본주의라는 변종으로 중국을 엄청나게 발전시킨 중국 정치체제의 전체주의적 경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중국이 개방해 자본주의를 받아들일 때만 해도 ‘언제 미국처럼 되는가?’가 주요 관심사였다. 경제적 개방이 정치적 민주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언론을 탄압하고, 인종주의를 부추기고, 자유주의적 가치를 경시하는 서구의 신권위주의를 보면서 사람들은 이제 이렇게 묻는다. ‘중국이 되려 하는가?’

우리 국민의 삶을 위협하는 것은 코로나19만이 아니다. 이 감염병으로 민낯이 드러난 전체주의의 ‘정치적 바이러스’가 훨씬 더 우리의 삶을 위협한다. 이 정치적 바이러스에는 세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는 진리의 독점이다. 그것이 독재로 불리건 아니면 독선이라 불리건 공산당만이 중국에서는 진리다. 과거의 모든 전체주의 정권이 그렇듯이 중국은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통제하고 하나의 의견, 즉 공산당의 의견을 강요한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렸던 의사 리원량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팬데믹으로 발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의 중국 공산당이 전염병이 없다고 하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환자를 돌보다 결국 자신도 감염돼 사망한 리원량이 죽기 전 원격 인터뷰에서 한 말은 전체주의 정권에 경종을 울린다. “건강한 사회에서는 한목소리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 전체주의를 예리하게 분석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들리는 리원량의 이 말은 전체주의 사회의 저 밑바닥에서 터져나온 절규이다.

정치적 바이러스의 두 번째 특징은 ‘은폐’이다. 전체주의 정권의 독선은 사회에 불투명성의 안개를 드리운다. 관료들은 실제의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하기에 급급하고, 진실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유언비어를 유포한다는 비난을 받거나 체포당하고 구금당하기까지 한다. 우한은 또 다른 도시의 이름을 소환한다. 체르노빌. 우한 시민들이 집안에 갇혀 가장 많이 본 것이 1986년의 원자로폭발 사건을 다룬 미국 드라마 ‘체르노빌’이라고 한다. 이 드라마에서는 이런 명대사가 나온다. “우리가 거짓말을 너무 많이 들을 때 진짜 위험은 진실을 더 이상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한 사태는 언론을 탄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때 더 많은 거짓과 허위정보, 유언비어가 전염병처럼 번진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끝으로, 정치적 바이러스의 세 번째 특징은 봉쇄라는 극단적 폭력이다. 전체주의 정권은 하루아침에 1000만명이 넘는 시민을 봉쇄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겉으로만 효과적으로 보일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이미 도시를 빠져나갔고, 남은 사람들은 지옥과 같은 삶을 맞이했다. 전체주의적 경향의 정치적 바이러스가 코로나19를 증식시키고 악화시킨 것이다.

한국은 이제 중국 본토를 제외하고는 코로나 발병 상태가 최악인 나라 중 하나가 됐다. 한국인은 세계적으로 경계의 대상이 됐고, 입국 금지 조치의 대상이 됐다. 중국과 같은 취급을 받고, 중국처럼 된 것이다. 중국이 이제는 한국을 조롱하고,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세계 최고의 의료 수준과 의료체계를 갖춘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가. 우리는 높은 시민의식으로 스스로 격리하고, 관계 당국도 정보를 비교적 투명하게 공유한다. 문제는 첫 번째다. 정치적 독선이 제때에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문제를 키운 것이다. 대통령이 전문가의 의견은 듣지 않고 코로나가 ‘곧 종식’된다고 장담하면 그의 추종자들은 마스크 끼는 것까지 조롱하는 독선의 정치적 바이러스가 사태를 악화시킨 것이다. 중국 눈치만 보다 중국처럼 된 것은 아닌가. 독선은 불통으로 이어지고, 불통은 무능을 낳는다. 무능을 덮기 위해 거짓은 양산되고, 반복되는 거짓은 진실을 인지할 능력을 파괴한다. 이런 사태의 반복을 예방하려면 지금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중국이 되려 하는가?”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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