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장요나 (5) 사업 정리하고 들어간 회사… 실력 인정 받아 파격승진

사업 승승장구하다 사업장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 돼 정리… 경력직 입사해 밤새워 일하며 실적 쌓아

장요나 선교사(왼쪽)가 1971년 2월 한영기업 대표이사 시절 직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

아내와의 신혼은 깨가 쏟아지거나 알콩달콩하진 않았다. 대신 안온하고 평탄했다. 우리 집 분위기가 180도로 달라진 건 아이들이 태어난 후부터였다. 결혼하고 곧 첫아들이 태어나고 10개월 후에 둘째 아들이 연년생으로 태어났다. 첫아들을 품에 안았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둘째 아들이 태어나자 더 바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가족을 갈망했는데 내게 진짜 가족이 생겼으니 말이다.

결혼과 함께 나는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을 하고 싶어 항상 사업 아이템을 구상했는데 마침 베트남에서 기막힌 아이템을 발견했다. 달걀 보관 용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달걀을 지푸라기에 엮어서 팔았다. 그걸 들고 오다 보면 아무리 조심해도 한두 개는 깨지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베트남에는 달걀 보관 용기가 따로 있었다. 그걸 보자 한국에서 직접 만들어 팔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달걀 보관 용기를 붙들고 씨름했다. 다양한 재질로 판을 짜고, 모양새를 만들었다. 그리고 여러 달 만에 달걀 보관 용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특허도 받았다. 다른 아이템도 눈에 들어왔다. 자연석을 팔면 돈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허가를 받아 강원도 철원에서 자연석과 정원석을 채취해 일본에 수출하는 무역을 했다. 역시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겼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7년 9월 자연보호운동을 천명했는데 철원도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사업을 이어갈 수 없게 됐다. 결국 사업을 정리하고 벽산그룹에 들어갔다. 경력을 인정받아 벽산의 계열사인 대한종합식품의 판매촉진 과장대리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대학원에 들어간다는 각오로 입사했다. 중역들은 교수고 업무는 내게 주어진 일종의 미션이라 생각했다. 남들이 퇴근하면 그때부터 넥타이를 풀고 웃통을 벗어젖힌 후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며 일을 시작했다. 나의 첫 미션은 통조림 판매량을 올리는 것이었다. 광고나 통계를 보면서 아이디어를 짜내고 화장실에 갈 때도 혹시 생각이 날까 싶어 메모지를 들고 갔다.

첫 번째로 회사에 제안한 것은 수당 제도의 도입이었다. 판매 실적이 좋은 회사는 대부분 판매에 따른 수당이 있었다. 우리 회사 영업부 사원은 월급제였다. 차량을 운전해 대형 매장에 상품을 배달해주는 게 주업무였다. 잘 팔리지 않는 상품에 대한 판촉도 하고 리어카를 제작해 중소형 매장도 배달하며 영업하도록 했다. 판매 실적에 따라 수당을 지급했다.

그렇게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일하는 재미를 제대로 맛보았다. 날마다 밤을 밝혀 새로운 아이템을 연구했다. 승진도 남들보다 빨랐다. 그러다 획기적인 일이 발생했다. 계열사 부장에서 갑자기 그룹 기획실장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김인득 회장님의 직접 지시라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파격 인사였다. 회장님은 내가 밤늦게까지 일하는 걸 몇 번 목격하고 경비 직원에게 나에 관해 물으셨던 모양이다. 그때부터 내 진짜 수업이 시작됐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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