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손영옥의컬처아이

[손영옥의 컬처 아이] 재택근무의 신맛, 가족의 발견

코로나19 사태가 가져다준 뜻밖의 기회…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은 재난의 양면성


비말(飛沫)이 튀는 거리 2m가 주는 공포는 어마어마했다. 마트에서 물건을 산 뒤 멀찍이 떨어져 가격을 묻는데도 저도 모르게 허리가 뒤로 젖혀지더라는 친구의 얘기를 전화로 들으며 서로 박장대소했다. 그렇게 웃으면서도 사태가 오래 갈 거라는 우울감에 씁쓸한 뒷맛을 삼켰다. 마침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되고, 보건 당국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에 나섰다. 그러나 공포에 움츠러든 사람들은 이렇듯 진작부터 실천하고 있었다.

이번 코로나19 위기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집이다. 많은 민간 기업들이 선택적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재택근무에 관한 한 우리 사회는 루비콘강을 건넜다. ‘(직원이) 안 보이면 노는 것’이라는 통념에 따른 심리적 저항감은 가공할 재난 앞에서 무너졌다.

재택근무는 미국에서는 수십년 전 도입된 개념이다. 미국에서는 보편화된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좀체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문화적 차이 탓이다. 한국의 기업 경영자들은 직원들이 집에서 일할 경우 제대로 할지 의심을 한다. 성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고, 또 성과에 대한 평가 시스템이 객관화돼 있지 않은 탓도 컸다. 근본적으로 가로막는 요인도 있다.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금융회사 직원은 “한국 기업에서 재택근무를 가장 꺼리는 이유는 해고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며 “재택근무한 직원이 기대한 아웃풋(성과)을 내지 못해도 자르기가 쉽지 않은 구조적인 제약 때문에 직원을 눈앞에 두고 일을 시키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택근무는 꿀맛일까. 이번에 해 본 사람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재택근무에 들어간 남성 지인은 “땡땡이친다고 할까봐 더 일하니 출근했을 때보다 더 피곤하다. 일과 휴식이 구분되지 않는 점도 문제”라고 말했다. 직장맘이라면 사정은 더하다. 육아문제 때문에 재택근무를 조건으로 재입사를 했다는 모씨는 “노트북 작업을 하는데 등짝에 달라붙은 아이가 엉뚱하게 엔터키를 누르는 바람에 하늘이 노랬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특혜받는다는 뒷담화를 들을까봐 더 열심히 일했더니 뼛골이 삭는 기분”이라고 하소연했다. 재택근무 6년 차인 그는 “그럼에도 재택근무 덕분에 출퇴근 왕복 4시간을 버리지 않고 일할 수 있었고, 무사히 애들을 키울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얼떨결에 맛본 재택근무는 분명 꿀맛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육아와 시간 관리의 장점 때문에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돼도 다시금 맛보고 싶은 강력한 신맛일지 모른다. 기업의 고위 임원들은 이번 사태 이후에도 노조를 중심으로 재택근무 제도화 요구가 분출할까봐 벌써부터 걱정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가져다준 예기치 않은 선물이 있다. 바로 ‘가족의 발견’이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늘었고, 설사 출근했다 하더라도 퇴근 후 갈 곳도 안전한 집뿐인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초·중·고는 물론 대학까지 개학(강)이 연기됐다. 스위트 홈이 세이프 홈이 된 세상이다. ‘온 가족 삼식이(하루 세끼 집에서 먹는 사람)’가 됐다는 페친들이 적지 않다. “평소 얼굴 보기 힘들었던 대학생 아들까지 요즘 집에 있어 매일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희한한 일도 생겼다”며 반기는 이도 있다.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은 대한민국 가장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문화다. 그래서 가장들에게는 기회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 명퇴당한 뒤 집으로 돌아온 가장들은 평생 가족을 위해 일했는데도 가족 사이에 끼어들 틈이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의 결핍에 문제가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코로나19 덕분에 많은 가장이 회사를 다니는 와중에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의 단맛을 보고 그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은 축복이다. 모든 재난은 이렇듯 양면성이 있다. 코로나19 이후의 패러다임 변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손영옥 미술·문화재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