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장요나 (6) 업무 스트레스 술로 달래다 결국 큰 실수

전직원 예배 드리는 자리에서 사회 보다 숙취로 월요일로 착각 새마을 조회 진행

장요나 선교사가 벽산그룹에서 근무하던 1978년 대한종합식품의 경북 포항 통조림공장에서 교육하고 있다.

33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벽산그룹의 기획실장 자리는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입사한 지 고작 4년밖에 되지 않는 내가 감당하기엔 벅찬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게다가 김인득 회장님은 일에 있어서 철두철미하고 가차 없기로 유명했다. 작은 실수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군대보다 더 엄격한 김인득사관학교에서 7년간 훈련받았다. 그룹 기획실장이니 업무 영역도 다양했다. 직원 교육부터 각 계열사 지원까지 각종 업무를 총괄하고 담당했다. 그때 건축에 대한 지식도 해박해졌다.

유능한 참모로 그룹의 소유주 대표에게 인정을 받았으니 남들이 보기에는 아쉬울 게 없어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항상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언제 호출을 당할지 몰라 마음 놓고 밥 한술 뜨기도 힘들었다. 그런 내게 유일한 즐거움은 술이었다.

퇴근하고 나면 으레 술집으로 향했다. 월요일은 원래, 화요일은 화가 나서, 수요일은 수없이 마셨고 목요일은 목이 차게 마셨다. 금요일은 금세 금세, 토요일은 토하면서 일요일은 일없이 술을 마셨다. 다행히 술이 세서 엔간히 먹어서는 티가 나지 않았다.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벽산그룹은 매주 화요일 전 직원이 예배를 드렸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회장님은 불가피한 일이 아니면 꼭 참석할 만큼 예배를 중시했다. 화요일 아침이면 다른 때보다 더 일찍 준비하고 신경을 썼다. 그런데 그날은 어쩐 일인지 아침까지도 술이 깨지 않았다. 출근부에 도장을 찍고 들어가 단상 위에 올라갈 때까지도 머리가 맑아지지 않았다.

나는 배에 힘을 주고 직원들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전원 기립, 지금부터 벽산그룹 직장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국기에 대하여 경례!”

아뿔싸. 그만 새마을조회를 진행한 것이었다. 매주 월요일 같은 장소에서 전 직원이 새마을조회를 하다 보니 착각한 것이다. 문제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국기에 경례를 하고, 애국가를 제창할 때까지 나는 그날이 화요일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관객석을 쳐다봤는데 사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목사님은 어색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애국가를 부르고 계셨다. 회장님은 눈을 부릅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가.’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애국가 3절은 후렴구에 접어들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까지 듣다가 두 눈을 질끈 감고, 애국가 4절은 생략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새마을조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의미에서 예행연습을 했다고 둘러댔다.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하는데 다리가 덜덜 떨렸다. 목사님이 단 위에 올라가시는 걸 보고 나서야 겨우 회장님의 안색을 살피는데 ‘아, 이제 나는 끝났구나’ 싶었다.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회장님은 노발대발 불같이 화를 냈다. 거룩한 예배에 사회자가 고주망태가 돼 애국가를 제창하는 게 말이 되냐며 그렇게 믿을 거면 집사를 그만두라고 호통을 쳤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