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독교 지도자인 사도 바울은 기원후 58년 죽음을 각오하고 예루살렘 공회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 체포된다. 이후 로마로 압송돼 수감 생활을 할 때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등 4편의 편지를 썼다. 이를 바울의 4대 옥중서신이라 한다. 교회론, 기쁨과 감사, 기독론,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가 담겼다. 이게 옥중서신의 유래다. 세계적 사상가들은 정치적 이유로 투옥됐을 때 많은 서신을 남겼다. 훗날 책으로도 엮였다.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감옥에서 보낸 편지’,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옥중서신-저항과 복종’ 등이 대표적이다. 20세기 초중반 무솔리니 파시즘 체제의 감옥, 히틀러 나치 치하의 수용소에서 가족과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묶은 위대한 저작들이다.

한국 현대사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이 소중한 기록이다. 1980년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형을 언도받고 복역한 청주교도소에서 부인 이희호 여사에게 쓴 29통의 편지에는 그의 사상과 철학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가로 14㎝, 세로 10㎝의 손바닥만한 봉함엽서에 깨알 같은 글씨로 써내려갔다. 한 달에 한 번, 엽서 한 장만 허용됐기에 긴 사연을 전하려면 글자를 작게 쓸 수밖에 없었다. 글자 크기가 쌀알 절반보다 작아 확대경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그 작은 공간에 보통 6000자 안팎의 글자를 새겼다. 200자 원고지로 치면 100장 분량을 넘길 때도 있었다니 놀랍기만 하다.

이들에게 감옥은 사유·사색의 공간이었다. 인간적 고뇌와 애환도 절절히 담긴 이들의 옥중서신은 감동과 울림 그 자체다. 근데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엊그제 자필 옥중서신을 통해 보수 대결집을 촉구하는 총선 메시지를 발표한 것은 황당하기만 하다. 국정농단으로 헌정사에 최악의 오점을 남겼음에도 참회와 성찰의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옥중정치에 나섰으니 이 무슨 해괴한 망동이란 말인가. 탄핵을 왜 당했는지, 감옥에 왜 갇혔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자신이 억울하게 정치적 박해를 받고 있는 민주 투사라고 생각한 듯하다. 대단한 착각이다.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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